빗점골...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숨은 계곡
빗점골...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숨은 계곡
빗점골은 지리산의 수 많은 골짜기 중에서도 가장 깊고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계곡 중의 한곳으로
이 계곡을 더 깊이 들어가면 절터골과 산태골, 왼골이라는
이름으로 분지를 하여 더욱 깊은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의신마을에서 삼정마을까지는 3km 거리로 벽소령 작전도로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가 연결되어 자동차로도 쉽게 접근할수 있으며 본격적인 산행은
삼정에서 벽소령으로 가는 임도를 따라서 시작을 한다.
임도를 따라 30분쯤 오름하게되면 빗점마을 흔적이 있는 이현상 최후격전지였다는
흐른바위를 만날수 있는데 이곳에서부터는 지리산의 숨은 비경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1. 산행 장소 : 지리산 빗점골
2. 산행 일시 : 2012 . 05월 06일(일요일)
3.산행 코스 : 삼정마을 - 빗점골 - 왼골 - 토끼봉 - 명선봉 - 명선남릉 - 빗점골 - 삼정
4. 산행 지기 : 지 혼자서...!
5. 준비물 :
- 40리터 베낭, 스틱, 바람막이자켓, 여벌등산 , 선글러스
- 물 500 리터 1병, 막걸리 2병, 김밥 2줄, 라면1봉(버너 ,코펠)
- 등산지도 , 비상약품, 카메라 (니콘 D700, 24-70, 50mm micro)
6. 이동 수단 : 돌팍 지 자동차
7. 오늘의 날씨
- 날씨 맑고 구름한점 없는 여름같은 더운 날씨
8. 특징적 산행 메모
- 선유동 수달래를 볼것인지...아님 진즉부터 가보고 싶었던 남부군의 궤멸장소였던 빗점골을 가볼것인지....
- 아침의 게으른 출발로 인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는 빗점골 선택을 하게 된 산행..ㅎㅎ
- 역시 혼자하는 산행은 늘 차분하고 부담없어서 좋다.
산행지도 및 길 찾기 | 산행 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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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 30 여수 집 출발 09 : 00 삼정마을 09 : 30 이현상 최후격전지(흐른바위) 10 : 25 왼골 들머리 잠깐 휴식 및 아침, 막걸리 11 : 30 물줄기 끝지점(계곡 최 상류) 12 : 20 토끼봉 13 : 05 총각샘 13 : 30 명선봉 14 : 20 명선남릉 하산시작 15 : 05 바위 전망대 위 소나무 15 : 30 이현상 아지트 15 : 38 이현상 최후격전지 (흐른바위) 16 : 00 삼정 -------------------------------------------- 산행길찾기 (지도는 클릭하면 원본으로 볼수 있음) - 빗점골은 절골, 산태골, 왼골의 물줄기가 모여서 빗점골을 이룸 - 삼정에서 흐른바위까지는 30분 정도 소요됨 - 흐른바위에서 너덜지대로 이어지는 능선 오름길은 명선남릉 오름길의 들머리임 - 흐른바위 바로옆(명선남릉 들머리부분)이 절골임 - 이현상 격전지(흐른바위)에서 명선남릉 들머리 지나서 산태골가는 거리는 아주 짧음( 5분거리쯤) - 산태골은 주능에 위치한 총각샘으로 올라설수 있음 - 산태골에서 왼골 들머리(오름길)은 1시간정도 계곡치기(혹은 희미한길도 보임)를 해야 됨 - 왼골은 토끼봉까지 3시간정도면 소요 될듯 함 - 왼골 산행길은 물줄기를 대부분 따르고 시그널 흔적 따르면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음 - 의신에서 삼정까지는 자동차로 진입 가능 - 덕평남릉은 1시간 30분이면 충분히 내려올수 있음 |
삼정 - 빗점골 - 왼골 - 토끼봉 - 명선봉 - 명선남릉 - 빗점골- 삼정마을 | 총 소요시간 : 7 시간 00분 |
빗점골은
주능선상의 명선봉(1.582.6m) 과 삼각고지 사이에서 흐르는 "절터골" 과
명선봉에서 바로 남쪽 아래로 흐르는 가운데 골짜기인 "산태골"
그리고 토끼봉 아래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는"왼골"이 모여서 만들어진 곳이다.
이 빗점골은 다시 대성골 과 합수 되면서 화개천이 이루고 마지막에는 섬진강으로 합수를 하게 된다.
화개골의 총 연장은 28km이며 지계곡은 빗점골, 오리정골, 덕평골.대성골(큰새개골, 작은새개골,수곡골 ) .
연동골.범왕골. 단천골.내원골.고사골(선유동골)등이 있다.
절터골을 따라 오르면 연하천 산장 또는 삼각봉으로 연결되는데 그 거리는 대략 8km에 이른다고 한다.
산태골은 명선봉과 또는 총각샘으로 연결되며 나머지 하나인 왼골은 토끼봉으로 연결된다.
오늘 오름 할려는 빗점골중 왼골은 이현상 최후 격전지인 합수내 흐른바위에서 절골을 바로 건너고,
명선남릉 초입을 왼쪽으로 꺽어돌면 산태골과 왼골로 오를수 있는 희미한 흔적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수 있다. 산태골은 절골에서 바로 근접해 있고 왼골은 계곡을 따라서 한참을 더 올라야 만날수 있다.
" 그 이현상이 빗점골 어디선가 사살됐다고 하던데요?"
예 빗점골 합수내 근처의 절터골 어귀에서 맞아 죽었다더군요
그 근처에 가면 지금도 귀신 우는 소리가 들린다해서 사람들이 잘 안가지요."
영감이 핀잔을 줬다.
"귀신은 무슨 귀신... 거기가 워낙 험한 곳이 돼서 자칫하면 길을 잃고 큰 고생을 하니까 사람들이 범접하지 않는 거지,"
사실 빗점골에서 주능선인 토끼봉으로 오르는 루트는 지금도 등산로도 나 있지 않은 전인미답의 비경이다.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 사령관이던 "공화국 영웅" 이현상은 그곳에서 그 전설적 생애를 마친 것이다.
- 이태의 남부군 중에서 일부 인용 -
지리산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남부군(빨치산)관련 시설물들
한때는 이것들이 반공이데올로기의 산 교육장으로 설치되었을듯 한데
언제부턴가 이 반공이데올로기가 시대의 정체성을 잃고 처절히 죽어간 남부군의 영혼처럼
지리산 깊은 골짜기마다에 방치된 영혼처럼 떠돌고 있는것은 아닌지...
지난 시대의 아픔이였건 , 아니면 반공 관련 산 교육장이였건간에
지나간 아픈 역사들의 흔적들을 공들여 만들어 놓고서
왜, 비법정 등로라는 이름을 붙여서 산행을 방해를 하는 것일까...?
지나간 근 현대사의 시대적 아픔들을 이제는 더 알리고 더 아파하고 더 많은 생각들을 해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암튼 오늘은 생각이 많은 초행의 산길을
그것도 지 혼자서 두려움도 뒤로한체 희미한 계곡의 사람 흔적들을 쫒아 열심히 올라봅니다.
남부군 빨치산 총사령관 이현상 최후 격전지![]() ![]() 이 지역은 남부군 빨치산의 총수였던 이현상이 1953년 9월 18 일 오전 11시경 서남지구 전투결찰사령부 제 2연대 차일혁 연대장 예하, 수색대장 000 이 이끄는 33명의 수색대와 교전을 벌이다 숨진 곳이다 |
이곳이 이현상이 최후의 순간을 맞았다는 합수내 흐른바위다. 합수내 흐른바위는 삼각봉과 연하천에서 흐르는 절터골과 명선봉(1586m) 토기봉에서 흘러내리는 산태골, 왼골의 물줄기가 합쳐지는 지점에 위치한 넓다란 바위이다. "지리산의 빗점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남부군"이다. 한 시대의 획을 그을만한 빨치산의 행적이 가장 극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면서 남부군의 처절한 궤멸과 붕괴가 시작된 곳이 바로 이 빗점골인 것이다. 군,경찰 토벌대의 빨치산 대 토벌작전시 대성동 계곡으로 토끼몰처럼 쫒기던 남부군이 군 경찰의 무차별한 맹폭으로 실제적인 남부군의 궤멸과 그 사령관 이현상이 최후를 맞이했던 곳이 이곳 빗점골이였던 것이다. 아픈 우리 현대사의 가슴아픈 영혼들이 방황처럼 떠도는 곳이 이곳 빗점골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현상 최후격전지라기 보다는 이른바 빗점골 회의를 갖고 사령관에서 평당원으로 강등되며 그리고 그 자신이 최후의 순간을 아니, 마지막으로 사살되어 발견된 곳이 빗점골의 합수내의 너덜지대(합수내 흐른바위)로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 ![]() |
남부군 총사령관이였던 이현상에 대하여 .....
글 출처 : 이현상 평전 - 안재성
그의 전쟁은 끝났는가?
1953년 9월 18일, 지리산 반야봉 남쪽 빗점계곡에서 이현상은 목숨이 끊어진 채 발견됐다.
경찰이 그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목에 여덟 발의 총알이 박혀 있었다.
그를 호위하다 열흘 전에 경찰에 잡힌 김진영, 김은석은 시신을 보자마자 털썩 주저앉았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죽여주십시오.” 이들을 본 경찰은 지리산이 떠나가라며 만세를 불렀다.
이렇게 이현상은 비극적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껍데기만 남은 그의 시신은 부패하지 않도록 방부제를 넣은 후
서울 시내에서 ‘전시’되었다.
그의 시신이 지리산 인근 섬진강 백사장에서 화장된 것은 1953년 10월 8일, 죽은 지 20일이 지난 후였다.
그의 장례는 항일운동에 평생을 바친 그의 삶을 존중한 토벌대장 차일혁이 치렀다.
“이현상에게 더 잘 어울리는 호칭은 선생님이었다. (…)
적군이라도 교전 중이 아닌 이상 절대 죽이지 못하게 하고, 동지의 주검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던,
눈보라 치는 겨울 산중의 걸인 움막 같은 천막 속에서 추위에 떨며 홀로 책을 읽다가
스르르 지쳐 잠들곤 하던 영원한 선생님이었다.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아니었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혜택을 버리고
혁명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며 춥고 배고픈 산속에서 죽어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
인간에 대한 사랑, 민족에 대한 사랑, 약자에 대한 동정심과 인명존중의 정신이라는 거대한 수림이 없었다면
자기희생의 마음을 지켜갈 수 없었다.”
비록 이현상은 지리산에서 운명했지만 그의 영혼은 반세기 동안 계속 현신해 왔다.
나이 어린 시다들의 고통에 마음 아파하며 몸을 불살랐던 전태일,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다가 결국 죽음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저항했던 허세욱 등으로….
이현상과 동료들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서남지구 전투경찰대 제2연대장 차일혁 총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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