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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그림 음악카페

영화 산체스의 아이들..!

영화 "산체스의 아이들"

- Children of Sanchez -                

           - 영화음악 : CHUCK MANGIONE               

         - 산체스의 아이들 CD 1 중 overture입니다.

 

 

        척 맨지오니(Chuck Mangione)는 1940.11.29일 업스테이트 뉴욕의 로체스터에서 태어났다.

            재즈에 조예가 깊었던 부친은 그가 8세되던 해부터 음악이론과 피아노 레슨을 시작 하였으며,

콘서트와 클럽으로 그를 안내했다.

 

10세 되던 해 디지 길레스피로부터 트럼펫을 선물 받고 재즈라는 그의 연주인생이 시작된다.

그는 이스트먼 음악학교에서 스쿨밴드 활동, 수석졸업, 23세의 나이로 전임강사로 발탁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65년 최초로 아트 블래키 앤 재즈 메신저스라는 전설적인 밴드에서 프로활동을 시작,

69년 자신의 밴드 Quartet를 결성하였고 클래식 지휘자로서의 활동을 병행하기도 했다.

 

75년도에 최우수 그래미 연주 작곡 부문 수상. 그리고 Feel So Good은 플래티넘의 영광을 선사한다.

이 후 '80년대부터 '94년까지 오랜 기간 활동을 중지하다가 다시 The Feeling's Back('99)의 음반으로 복귀했다.

그는 플루겔혼이라는 악기를 대중에게 소개한 사람이고 플루겔혼으로

한시대를 풍미한 연주자이자 작곡가이다.

 

 

 

영화 ‘산체스의 아이들’은

멕시코 빈민사에서 살고 있는 산체스 가(家)가 겪는 삶과 애환을 주소재로 하는 드라마 형식의 작품이다.

오스카 루이스(Oscar Lewis)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할 바틀렛(Hal Bartlett)이 연출한 이 영화는

안소니 퀸(Anthony Quinn)의 호연으로 당시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얻기도 한 수작이다.

 

영화도 좋지만 이 영화에 흐르는 영화음악은 영화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음악을 맡은 사람은 프루겔 혼의 대가인 척 맨지오니(Chuck Mangione)다.

프루겔 혼은 트럼펫의 일종으로 남성적인 악기라고 할 수 있는데,

척 맨지오니는 이 영화에서 서정성을 극대화하여 프루겔 혼이 가지는 또 다른 매력을 들려주었다.

 

영화음악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준 사운드트랙이다.

척 맨지오니 자신도 이 앨범은 자신의 강한 작품으로 여긴다고 할 정도로,

이 음악에 상당한 공을 들였고, 그 노력은 음악이 가지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탄생하게 되었다.

 

 

 

                                                                      대학시절이였지요...

하고 다니는 꼬락서니는 막걸리같이 생겼는데..

귀에 들고 다니는  소니 워크맨에서는 이 양반의 적응하기 힘든 음악들이 흘러 나왔다는...ㅎㅎ

분수에 맞는 음악좀 듣고 다니라고

여러 소리들  들었지요...!

막걸리와 어울릴만한 뽕짝같은 딴따라가 좋을듯 싶은데...

어쩌자고 이런 음악드을 듣고 다녔는지...

 

연주 시간들도  되게 길답니다.

거짐 20 여분까지 연주가 계속 되니까요...!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도 너무 좋은 음악입니다.

consuelo's love theme 가 더 잔잔하고

지친 마음의 영혼을 위로해주는 듯한 그런 느낌의 음악입니다만...오늘은

overture 로도 들어보고 싶어지는 날입니다.

 

love theme 와는 느낌들이 상당히 다른....

연주와 노래에서 전율처럼 힘이 느껴지는 그런 연주입니다

저 깊은 폐부속까지 뒤흔드는 푸르겔 혼의 박진감 넘치는  

 척 맨지오니의 음악

 

한번 들어보시지요...!

 

 
 

< 영화 이야기 >

   

영화『산체스의 아이들(Children of Sanchez)』은

오스카 루이스(Oscar Lewis)의 실화에 바탕한 동명소설을 '홀 베트렛'(Hall Barttlet) 감독이 영화화 한 작품이다.

멕시코 서민의 삶을 진지하게 담고 있는 이 영화는

'멜라니 파라(Melanie Farra)'라는 새로운 여배우를 소개하며,

우리가 잘 아는 멕시코계 혼혈인 명배우 '안소니 퀸(Anthony Quinn)'을 등장시키고 있다.

다소 어색한 말투이지만 장녀 콘수엘로 역의 '멜라니 파라(Melanie Farra)'의 진지한 연기와

아버지 안소니 퀸의 원숙한 열연이 단연 돋보이는 영화이다.

 

영화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한다.

성장한 산체스 家 아이들은 멕시코 시티의 슬럼가 어두운 단칸 골방에서

삶에 지친 아버지와 만삭인 아내, 조카들, 유모, 처형까지 뒤섞인 채로 함께 생활한다.

얼른 상상이 가지 않는 모습이다.

우리네 생활의 모습이 그랬던 것처럼, 혹은 지금도 그러한 곳이 있는 것처럼,

영화의 카메라는 60년대 말 멕시코 시티의 한 구석,

삶의 무게가 절대로 가벼울 수 없는 그들 일상의 진한 아픔 속으로 파고든다.

 

 

산체스 家의 아이들은 이제 성인이 되어 가난과 방황 속에서 막막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무관심으로 밖에 비치치 않는 아버지는 여전히 권위만을 앞세우고,

시내 도처에 또 다른 자식과 아내를 두고 살아간다.

이러한 그를 콘수엘로는 용납할 수가 없다.

급기야는 집을 나가고 여자로서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보려 애를 쓰지만 뜻대로 잘되지 않는다.

콘수엘로의 외할머니는 경직된 그녀에게 남자와의 사랑에서 여자의 가치를 발견하고 사랑을 찾으라고 하지만,

그녀에겐 그것만이 인생의 돌파구는 될 수 없었는가 보다.

그녀가 만난 남자 역시 처자식을 숨겨온 유부남이었고,

그런 그를 콘수엘로는 역시 용납할 수 가 없었다.

 이제껏 그녀가 처한 현실은 너무나도 떨쳐버리고 싶은 것이었으며,

그것으로 하여금 그녀가 그곳에서 벗어나려는 강한 욕망과 스스로의 독립심, 자의식이 강한 성격으로 키워냈는지도 모른다.

남자와의 아이는 지워버렸지만, 그녀는 다시 집에 돌아갈 수는 없었다.

 

콘수엘로를 데려가기 위해 찾아온 아버지의 모습에서 가슴 뭉클함을 느낀다.

등을 돌리고 떠나간 자식이지만, 어려운 상황에 처한 딸을 위해 먼길을 달려온 것이다.

 

아버지는 복권에 당첨이 되고, 모든 아이들의 안식처였던 외할머니는 눈을 감는다.

아버지는 땅을 사서 그들만이 살 새로운 집을 혼자서 짓기 시작한다.

이젠 행복하게들 잘 지낼까 하지만, 또다시 콘수엘로는 아버지와의 다툼으로 집을 나가고,

스튜어디스의 꿈을 위해 심야의 술집, 속옷 차림의 웨이트레스와 승무원 학원생활을 강행한다.

 어느날 술집에서 일하는 콘수엘로를 또다시 찾아온 아버지는 그런 차림의 그녀를 창녀로 치부하며 등을 돌리고 만다.

그 후로 콘수엘로는 심한 괴로움에 시달린다.

드디어 아버지는 새집을 다 짓고는 식구들을 불러모은다.

아버지는 노숙생활을 하던 마누엘을 데려오고,

두 딸의 미혼모인 그의 차녀 마르타와 그녀의 새로운 남자와 함께 짐을 싣고 이사를 한다.

 

삼촌과 숙모, 이사하는 날 창녀 출신의 여자를 아내로 데려온 로베르또와

그녀의 부모 등 온 식구들이 모두 모여 파티를 하고 즐겁게 음식을 먹지만,

갑자기 스튜어디스가 되어 나타난 콘수엘로는 아버지에게 자식들에 대한 사랑도 없는 무관심과 이기만 있다고 말하며 심한 욕설만 내뱉고는 돌아간다.

 

아버지는 새로 지은 집의 콘수엘로를 위한 방을 바라보고는,

산 위에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며 밤이 늦도록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다.

 다시 돌아온 콘수엘로는 '용서해 주세요'라고 흐느끼며 아버지의 품에서 부대낀다.

 

부모에게 자식들은 언제나 치기스런 어린 아이이며, 늘 보채고 불만만 가득 품는 어린애일 뿐인 것일까?

'자식을 낳아보기 전에는 절대로 부모의 그 애틋한 사랑을 알 수가 없다.'라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이 새삼 새롭게 들려온다.

언제나 무관심으로만 치부했던 아버지에게 그들은 언제까지나 어린 아이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목 또한 '산체스가 사람들'이 아니라 '산체스의 아이들'이라고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들의 아버지는 한마디의 따뜻한 말도 없었으며, 그들을 위해 어떠한 물질적 풍요 또한 가져다주질 못했다.

그러한 것들이 부정(父情)을 확인하는 길이라면, 세상에 애비 없는 자식들은 얼마나 될까?

 

그들의 아버지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조용히 그들의 삶을 인도하고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으며,

언제나 그들을 아스라히 조용한 눈길로 내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물밀 듯 밀려오는 죄책감으로, 때로는 가슴이 저미어 오는 안타까움과 함께 말이다.

 

허나, 영화의 초점은 '가족들간의 사랑'에 있다고 보기에 힘들다.

멕시코 서민들의 삶과 고달픈 현실의 단면과 애환들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단지 이 영화는, 그들의 힘겨운 삶의 모습에서 소중하게 확인되는

가족간의 사랑은 더욱 더 고귀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이상 사진 글 모두 인터넷 상에서 스크랩 했습니다.정확한 출처를 밝혀야 되는데 출처 확인을 못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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