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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진 지리산 이야기/제밌지.지리야그.!

지리 ...그리운 옛 이야기

 

지리 ... 그리운 옛 이야기  

                   언제적 일이냐고요...?

        1988년 여름인 모양이네요...!

그때는 교련복이 유용한 등산복이던 시절입니다.

물론 등산화는 특별한 고수들 말고는 대부분 시장통에서 얻어온게 태반이였답니다.

군 제대를 한사람은 군화가 최고의 등산화였을것은 당연한것이구요

가난한 대학생들...등산화라고 해봐야...운동화가 전부였겠지요, 어쩌다가 비비화도 있었지만..!

 산에가면 등산화, 운동할적엔 운동화 , 걸어다닐적에는 평상화...머...만능신발이였지요..ㅎㅎ

윗쪽 사진은 촛대봉 왼쪽 봉우리인 모양입니다.

뒤로 천왕봉까지의 희미한 능선들이 보입니다

 여기는 선비샘을 한참 넘어서 칠선봉  가기전의 바위 전망포인트입니다.

지금은 이곳에 이런 간판이 대신해서 자리를 하고 있지요

" 천왕봉을 찾아보세요 "

 

그때의 산행복장은 그랬답니다.

산 좀 탄다는 사람은 절대 면바지를 입어야 한다고...

그래야지 바지에서 땀을 흡수할수 있다고...

지금하고는 많이 상반되는 그런 생각들인듯 합니다.

 

베낭...!

저렴하고 무거운 베낭에 무거운 물건들이 많이 들어갔지요

3박 4일치의  먹거리들이 들어가 있으면서도 값 싸고 양많은 먹거리들...!

이 무거운 베낭을 등짝에 메고서 그.. 고행같은

종주길에 여러사람 눈 풀린 사람 많았었다는...!

 

참 텐트도 보입니다.

알루미늄 폴대로 비오면 물 빠진 독처럼 물이 새어들어오던  그런 무거운 텐트..ㅎㅎ

 

백무동 한신 지계곡입니다.

보이는 폭포는 천령폭포 이구요

물론 지금은 비법정등로로 묶여서 쉽게 찾아갈수가 없읍니다만.

그때 시절에는 이곳이 정규 등로였었지요

이 등로로 쭈욱 오르면 장터목의 그 엄청난 텐트촌(쓰레기 소각장)으로 바로 올라설수 있답니다.

지금의 세석으로 이어지는 한신계곡 등로는 당연 없었겠지요(정확할지는 모르겠네요.?)

예나 지금이나  이곳 한신 지계곡의 폭포들은 지리산에서 가장 멋진 폭포들을  몰래 품고 있답니다.

길이 없는것처럼 공단에서 위장을 해놓아 보면 볼수록 웃음이 나오는 비법정 등로이지요..

허 허...토끼봉입니다..!

보통은 토끼봉 오르기전 화개재에서 점심을 먹었지요(뱀사골산장에서...)

그때의 종주라 함은 보통 3박 4일이 걸렸었으니까요..!

첫째날은 노고단에서 일박을 하고

둘째날 점심을 이곳에서 먹는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2박은 연하천에서..

그리고 3박째는 장터목산장에서 했었지요

 

뱃심으로 산을 탄다던 말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없을듯 싶습니다만...

꽉찬 똥배에 무거운 베낭을 메고 이곳 토끼봉까지 오를라 치면...

토끼봉  이정표에서는 하늘이 노랗게 변하곤 했드랬지요..ㅎㅎ

등에는 그 무건 똥짐에다가 분명 한손에는 자바라 물통이,  또 한손에는 휘발유통이 들렸을 가능성이 크지요....!

밥 묵어야 할 끼니 수가 너무 많았으니까요...

 

그때는 토기봉 정상이 완전 헐벗은 땅이였군요...

아마 지금과는 달리 토끼봉 바위에 올라서면 묘향대가 훤히 조망되었겠네요

 

 

에구....반야봉의 촌시런 이정표 입니다.

물론 그때도 지금처럼 노루목에 짐들을 놓아두고 선택처럼 올라가던 곳입니다.

지금도 이 이정표가 있는지 확실하지가 않습니가만..!

 

▼ 노루목의 겨울입니다.

이추운날 누군가가 이런 멋진 비너스 눈사람을 만들어 놓았는데...

마지막 빙점을 못찍고 미완으로 남겨 놓았던 모양입니다.

해서

마지막 빙점을 돌팍이 가슴에 찍으려다가..

죈한테..,....무진장하게 혼줄이 났다는...전설같은 이야기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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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천 산장의 텐트촌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텐트무게 엄청났지요...

폴대는 많기도 할뿐더러 무겁기도 무진 무거웠지요...

대부분 허접텐트들이라서..텐트위에 비닐을 덮어 씨워야 하는...

 

안쪽에는 이불들도 보입니다.

집에서 봄이불들을 비닐에 말아넣어서 가지고 다녔었지요..!

이때 군용모포는 엄청난 대박같은 이불이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구요

 

암튼 그때의 연하천 산장에서의 한밤중은

온통 불야성과 술판에 딴따라였지요...거짐 날밤으로 지새운 밤들이  태반이였을겁니다.

자고 싶어도 시끄러워서 취중이 아니면 잠들기 힘들기도 했었다는....

 

▲ 칠선봉인데...예나 지금이나 독뎅이들은 변한게 없어 보입니다.

 

살아천년 죽어천년....이라던 이  지리산 고사목

그때에는 이런 고사목들이 여기저기 즐비했었지요

고된 등산길에 땅만 처다보고 갈적에 누워있는 고사목에 박치기 하는 경우들이 많았답니다.

 

혹시.....어디에 있던 고사목인지 알수 있을런지요...?

 

제석봉 정상부근에서 옆허리를 타다가 약간의 내림길중....

촌시런 철계간(넓은 철계단)을 내려가면 평편한 안부가(통신골로 올라서기도 하는 모양입니다.)있는데...

이곳에 엄청난 덩치로 자리를 지키던 고사목인데...

결국 세월을 이기지는 못하는군요..!

지금은 흔적으로 돌들만 짠뜩 쌓아져 있답니다. 점심밥상이지요..!

이렇게 쓰러진 고사목들은....

 지금은 대부문 비법정 등로의 출입구를 죽어서도 고행처럼 막고 있답니다.

 

이곳 고사목은 항시 거처가는 영원한  포토존이였답니다. 

천왕봉 바로 10m 전입니다.

그 엄청난 대박같은 운해의 장관입니다.

그때이후로 아직껏 이만큼한 운해의 바다를 본적이 없는듯 합니다.

물론 이 운해을 보기위해서는 전날   온몸에 비를  쫄딱 뒤집어 썼지요..ㅎㅎ

기억으로..그때 카메라가

삼성 AF-...로 시작되는 45.000원짜리 필름  자동 카메라였던것 같습니다.

아이고 예나 지금이나 그넘의 이어폰은 무진장하게  끼우고 다녔든갑네요

오살라게 큰 스테레오 카세트 라디오을 등에 메고 요란하게 틀면서 산행하던 시절인데..

그때도 저 쥐꼬리만한 이어폰에 ......

그때 남들이 무진장 부러워하는 SONY WARKMAN를 들고 다녔지요...

많이 으시댔습니다.

노래도 녹음해서 들을라치면 음질이 좋다던  sony 사의 공테이프를 사야 했지요..

암튼

워크맨 이후로도 아이와 등등 동금이상의  미니 카세트 많이 말아 먹었네요

물론

지금은 이것들이 MP3 가 대신하고 있습니다만...!

 

 

지리 첫종주는 88년도부터 시작이 되었는데...

이번 사진에서는 89년도 봄같은 겨울이였던 모양입니다.

장발같은 머리하며....

서부영화에나 나오는  카우보이가 입었을 법한 조끼하며...

촌시런 빨간토시 양말까지...

게다가 눈길에서  시원한 물들이 실실 잘도 들어올듯한 운동화 하며....

거짐  환장할 복장입니다.

그래도 이때는

이정도 복장을 갖추고 다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는...

 

뒷 배경은 삼도봉에서 토끼봉쪽 방향으로 찍은듯 한데..확실치가 않군요

아... 좀 풋풋할적도 있었구만요...!

생각해보니...그때의 젊은 대학생들은 지금보다는 더 운치와 패기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여름 방학철이 되면

이 대학생들의 종주 산행으로 온산이 뒤집어지곤 했었는데...

딱 이런 모습 ..이런 복장으로...

양손에는 기름통과 물통마저 들고서...

것도 모자라...뒤쳐지는 여자친구들 베낭까지 앞뒤로 들쳐 메가면서...

 

벌써 지리산이 두번 바뀔만큼의 세월이 흐른 모양입니다.

갑자기 앨범 뒤적거리다가 디세랄로 카피해 보았는데...

원판불변이라고...화질이 보기좋게 티미합니다.

 

 

 

쌍팔년도 시절의 돌팍의    지리산 관련  먼 추억 이야기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