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곳에 가고싶다

묵호등대.에서 억척스런 삶의 희망을 엿보다.

 묵호등대에서 억척스런 삶의 희망을 엿보다.

 묵호항에서  딸아이 머리만큼한 대게로 배를 채운  얼치기 여행가족들...!

 사전의 아무런 준비없이 내달려온 묵호항..!

 이제 도데체 어디로  달려 보아야 하는 것인지...?

 근처의  묵호등대 , 어달리 해변,  망상해수욕장 , 천곡동굴 ,

 새천년도로 , 눈부신 일출이 아름다운 추암등등...!

 이것들중 한두군데만 볼 시간이 주어지는데...

 어디를 가면 잘했다고 소문날까...ㅎㅎ

 

 배도 꺼칠겹 지겹도록 앉아만 있는 자동차에서 벗어나볼까...?

 그래...적당한 운동겸 가까운 묵호등대라도 올라가 보는것은 어쩔끄나...?

 

 

묵호등대..!

지금에서야 조금씩의 깔끔함을 보이는듯 합니다만

조금만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척박한 삶이 보이는 달동네에  이곳 묵호등대의 불빛을 밝혀서 실낯같은 희망을 비추어 주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 지난한 시간동안을 억척스러운 모습으로 삶의 무게를 견뎌냈어야 할 달동네 사람들

 그 달동네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오늘 하루 품일을 하고있는지  사람은 보이지 않고

 한 낮부터 한없이 느려터진 누렁이 똥개만이

지나는 사람들한테 사나운 경계심 마저도  미련없이 버리고 ,

지 맘껏 나뒹굴고 있습니다.

 

 

 

 

 

묵호 등대 오름길을

뭇 사람들은 바다로 가는 골목길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낮은 집들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비탈 골목들이

동해바다와 맞닿아 있어어 그런 것이겠다 싶습니다.

 

허름하고  외진곳에 자리잡은

  이 달동네로 올라가는 바다로 가는 골목길에서

왜 고난하고 척박스런 삶의 흔적들만이  

눈에 밟히는 것일까..?

 

그 옛날

이 마을은 가난한 뱃사람들과 시멘트 석탄공장의

 노동자들이 모여살면서부터

만들어진 마을이라고 하는데 ..

그 시절을 살아냈어야 할 지난한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보이는듯 싶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행이라고 하는것은  늘  아는만큼만 보이는 것인지..?

보이는 만큼 느끼는 것인지...?

 

어떤이들은 마음 울적하고 답답할적에 이곳에서 새로운 희망과 시원한 갈증을 찾는다고 합니다만

돌팍한테는

자꾸만 버거웠을 척박한  삶의 무게만 눈에 밟히고 있습니다.

 

녹슨 지붕에 앉아 빗소리 듣는다

                     - 김 창균 -

                                                                   

이렇게 세월이 한 곳으로만 올려가는 법도 있구나

유난히 녹이 슨 함석지붕에 앉아

늦가을 들판을 본다.

 

어느 옛날 목수가 지붕에 못질할때

못질한 부분의 상처가 이렇게 덧날줄 알았을까

밤이 되면서  이 상처속으로 별들이 들어가고

가끔  빗물이 스며들어

이윽고

사람이 떠난 구들장엔

꽃들이 조그만 얼굴을 내민다.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 - 최 남선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따린다, 부슨다, 문허바린다.
태산(泰山)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슨다, 문허바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이하 생략

 

그 옛날 국어 교과서에서 단골처럼 시험에 나오곤 했던 최남선 시인님의 대표 시입니다만...

이것이 왜 이곳에서 자리를 잡은것인지...줄곧 궁금합니다.

최남선시인의 고향이 이곳 묵호인 것인지..?

아니면 이곳 바람찬 등대언덕에서 노년이라도 보냈던 것인지..?

 

청소년들의 희망찬 삶의 개혁을 노래한 이 시어 들하고

소외된 가난한 사람들의 바람 뚫린 안식처였을  이곳 들하고 무슨 개연성이라도 있는 것인지....?


 

 

 

 

 

 

325

 

 

묵호등대

묵호항은 1941년 8월 11일 개항되어 무연탄 중심의 무역항 역할과 함께 어항으로 발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이곳 묵호등대는 1963년 6월 8일 건립되어 처음으로 불빛을 밝히기 시작하였다.

 

해발고도 67m에 자리잡은 묵호등대는 백원형 철근콘크리트조(높이 21.9 m) 7층형 구조로

등대 기능을 강화 하고 , 동해바다 백두대간 두타산, 청옥산과 동해시를 보망할수 있는 등대 전망대

, 해양문화전시물, 파고라 등 편의시설을 갖춘 해양문화 공간을 2007년 12월에 조성하였다.

 

 특히 묵호등대 해양문화공간에는 1968년 정소영 감독 作 영화 " 미워도 다시 한번" 의

주요 촬영지를 기념하기 위해 2003년   5월 "영화의 고향" 기념비가 세워졌다.

묵호등대는 묵호황 주변 해안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동해 연안 항해선박과 묵호항을 찾는 선박들의  안전한 길잡이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국내기술로 개발한 프리즘렌즈 회전식 대형 등명기를 2003년 10월 설치하여 약 48km(26 海里)에서도

등대 식별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개방시간은 06 : 00(동절기 07 : 00) - 18 : 00 (동절기 17 : 00) 입니다.

묵호 항로표지관리소 (T. 033-531-3258 )

 


 

 


 

 

 

윤성택님의 희망이라 싶은  시 중에서 ....


  
문득 나는 사람이 그리워진다
놓여진 술병에라도 둘러앉아
스스럼없이 생각들을 펼치고
서로서로 나누고 마시며
우습거나 슬프거나 이미 떠나간 일이거나
엄지와 검지로 들어올리는 술잔의
그 더워진 마음을 보고 싶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집 근처 수퍼에 들러
찬 소주 한 병 더 사다가
사는 게 늘 흥행에 상관없이 신파조인
내 마음 한 구석 단 한 사람의 심금을 생각하며
튼실히 삶의 이정표라도 박아두고 싶다
병뚜껑을 돌려 따면서 차가운 술이 어떻게
뜨거움으로 마음 덥혀오는지 



 

 

 

 

묵호 등대 오름길...!

 사람들은  이 달동네 오름길을 바다로 가는 골목길이라고 했었던 이유를 자연스레 실감하게 됩니다.

바다로 떠났던 지 아비와 지 자식들을 한없이 기다렸었을....

지 아비를 죽음으로 몰고갔을 바다 바람..!

오징어며 명태며 고난한 생활들을 말렸을, 이 바람의 언덕...!

 

이 바람의 언덕에서도 이제는 가슴 따스한 희망의 바람이 불어 오겠지요..ㅎㅎ

 

 

 

 

 

묵호등대 오름길 즉 동해바다로 나가는 길에서 만나는 출렁다리입니다.

새가슴처럼 흔들림에 간이 콩알만해질듯도 합니다만

이름과는 달리 해도 해도 견고한지라....한치의 흔들림도 느껴지질 않네요

무뉘만 출렁다리가 되어버린듯 합니다.

 

겨울보다는 새싹들 올라오는 봄날이면  훨씬 이쁠듯한  " 바다로 가는 골목길"

이제...

이곳에서도 한없는 이별을 해야 할때가 된 모양입니다.

 

다음 어느날엔가 불현듯  다시 찾아와  볼수 있을런지...?

 


우리들의 착한 네비양은 묵호등대  다음으로 가볼곳을  추암..!

추암의 촛대바위 라고 추천을 하고서는  열심히 찾아 나섭니다.

이 네비양...!

알콜이 덜 말랐는지..아님 부족했던것인지...

추암을 찾아 한참을 헤매고 있습니다.

융통성(?) 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그녀인지라,   불법유턴이라는것을 할줄 모르니

바로 갈수 있는 길을 돌고 도는 것이지요..ㅎㅎ

융통성 없는 네비양의 업그레이드 될수 없는 어쩔수 없는 한게인 모양입니다.

결국

묵호의 어달리 해변과 황태를 말리는 바람의 언덕위의 황태덕장을  한없이 돌게 만드는군요..ㅎㅎㅎ

덕분에 계획에 없던 아름다운 어달리해변길과 황태덕장을  어거지  덤으로 구경을 하게 됩니다.

 

 

 

 

 


     어설프고 서툰 글들이 다시한번 

    daum view 의 베스트에 올려지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돌팍한테서는 이런 일들이 아주 드문  경우들이러서

   이것 마저도 자랑이랍시고 속없이  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