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의 첫날
보성 득량역과 강골마을을 들른 후 집에 가는 길에 들렀던 태백산맥의 주 무대였던 보성여관
잠깐의 사진 몇장으로 흔적의 기록으로 남긴다.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속 '남도여관'이란 이름으로 더 친숙한 '보성여관'은
소설에서처럼 해방 이후부터 한국 전쟁까지의 시대적 상황을 기억하는 근현대 삶의 현장이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억의 장소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그 시절, 이 건물은 여관이었고, 그때의 실제 상호는 '보성여관'이었다.
당시 교통의 중심지였던 벌교는 일본인의 왕래가 잦아지며 유동인구가 증가했고,
그 역사의 중심에 있던 '보성여관'은 당시의 5성급 호텔을 방불케 할 정도의 규모였다고 한다.
근현대 벌교의 역사문화환경을 형성하는 중요한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했던 '보성여관'은
2004년 역사 및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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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은 보성여관의 관리단체로 지정되었으며, 2년간의 복원사업을 거쳐 2012년 6월 7일 예전 모습을 되찾은 '보성여관'을 새롭게 개관하게 되었다. 새롭게 복원된 보성여관은 벌교와 보성여관의 역사를 담고 있는 전시장과 차와 음료를 마실 수 있는 휴식공간인 카페, 다양한 문화체험의 공간인 소극장, 그리고 소설 속 남도여관을 느낄 수 있는 숙박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층은 다다미방으로 다목적 문화체험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1층 카페는 오래된 전통찻집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곳이다. 요즘엔 브랜드커피전문점이 즐비한 가운데 보 성여관을 더욱더 돋보이게 하는 곳이 카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른들은 다시금 추억의 향수를 일으키는 곳이고, 젊은이들은 다도체험의 기회가 주어진 곳이기도 하다. 찻잔 하나도 옛 멋이 그대로 담겨있다. 차의 종류는 다양하게 구비되어있다. 커피, 녹차, 황차, 국화차 등 계절에 따라 다양한 차를 마실 수 있다. 보성여관 카페는 큰 창문 또한 매력적인데, 창가에 앉아 내리는 비·눈을 보며 차를 마시면 더욱 운치있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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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여관의 2층 공간은
일자형 평면에 4칸으로 구성되어 전통 일본식 다다미방과 거의 흡사하며
규모면에서도 당시 다른 건물에 비해 큰 규모이다.
현재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2층의 다다미방은 좋은 전망과 색다른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보성 여관은 판자벽에 함석지붕, 전형적인 일본식으로 지어진 이 2층 건물은 옛 모습 그대로이다. 일본인들은 강점기동안 전국적으로 이런 건물들을 수없이 지었는데그동안 무차별적으로 헐어 버리고 시멘트 건눌들을 짓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이런 건물들은 구경하기 어려운 귀물이 되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역사는 문자의 기록만이 아니다. 유물을 보았을때 설명이 필요없이 지난 시대를 한순간에 실감하게 된다. 수난과 고통의 역사일수록 그 시대의 유물은 남겨지고 보호도되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 중심거리로 소위 본정통이라고 불렸던 이 길에 이 건물이 원형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건물은 2004년 근대문화유산(등로문화재 제 132호)으로 지정되어 2012년 6월 7일 중건 개관하였다. 문화슈산국민신탁이 숙박업소등으로 운여앟고 있다.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그 시절에도 이 건물은 여관이었고 그때의 실제 상호는 보성여관이었다. 소설에서는 임만수와 그 대원들이 한동안 숙소로 사용하던남도여관으로 그려졌다. 지금이 어느때라고 반락세력을 진압하고 민심을 수습해야 할 임무를 띤 토벌대가 여관잠을 자고 여관밥을 먹어? (태백산맥 3권 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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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태백산맥의 주요 무대가 되어주었던 현부자 집
그리고아래 사진은 태백산맥의 주요한 주인공이였던 소화 와 그녀가 머물렀던 집을 형상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