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세번째 주말에는 고향 강진에 벌초를 간다.
애써 자주 찾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명절때와 벌초하러 갈때나마 고향땅을 밟을수 있는 모양이다.
지지리도 촌구석인 이곳 강진 삼화마을에도 인터넷의 영향인지 등산 동호인들의 발길이 심심찮게 이어지는 모양이다.
황금 벌판을 뒤로한 산이 화방산이다.
廣大바위
큰바위얼굴이라는 바위다 어렸을 적 우리는 이를 강대바이라 불렀다. 그냥 소리나는데로 명명했던 모양이다. 지금에 와서 큰바위얼굴이라 표준화 했는데 정감은 좀 덜한 모습이다. 기억에 강대바이를 형제바이라고도 불렀었던것도 같은데... 정확치가 않다. 그때 우린 이 강대바이 밑으로 동네 형들을 따라 소를 띠끼로 가곤 했었다. 근처에 소를 띠껴놓고서 우린 줄곳 맹감이며 깨금을 따먹곤 했었다 이제 사람은 떠나고 산속에 숨어있던 전답들은 자연에 다 묵었다. 조그마한 산들도 이제는 울창하여 쉽게 드나들수 없는 정글이 되었다.
三化井 이게 삼화정이라 불리었던 우물이였구나...!
그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우물이름을 본다.
아마 그때는 우물공동체 마을이였을까...?
모든 생활의 중심이 이 우물에서 이루어졌었다.그때 우리집에는 우물이 없었다.
대부분 우물이 없거나 물이 넉넉치가 않았었기에 다들 물을 질러
날랐다.
많이 어렸을적인데(초등1-2학년) 물지게를 져 날랐던것 같다.
이곳 삼화정도 이제는 사람이 떠나고 없다.
누군가 가끔은 사용을 했음인지 정갈함이 남아있긴하다.
가끔 들러보는 고향의 뒤안길들은 이제는 갈수록 자연의 품으로
묵어들어가는것이 스산한 바람결에 뒹구는 낙옆처럼 허하다.
그나마 고향을 가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내 삶의 흔적이
이 삼화정이지 않는가 싶다.
멀리 보이는곳은 재 너머에 있는 강대바이다
어렸을적 우리는 광대바위 보다는 들어왔던 그대로 강대바이라 부르면서 지내왔다.
삼화마을에서는 보이질 않고 삼화마을에서 저수지로 이어지는 재를 넘어서야지 사람얼굴형상을 하고있는 강대바이가 보인다.
이곳 신기마을 벌판에서는 그나마 가장 사람얼굴다운 모습이 잘 보이는 위치이지 싶다.
삼화마을에서 저수지를 경유하여 강대바이를 구경하고 이어지는 산행길이 앞에 보이는 화방산이다
산의 생김새로 보아서는 공룡이 않아있는 형상같기도 한데....
삼화마을 아랫동네인 신기마을이다.
요즘 된장마을로 더 유명세를 타고 있는데 된장맛이 꽤나 진득하덴다.
순수 메주콩으로 만드는데 절대 국산만을 고집. 전통방식으로 된장을 담근다 한다.
강진군에서도 주력상품으로 적극 홍보하고 지원을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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