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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싶다

정선 아라리촌...그 옛시절로 떠나는 시간여행

         정선 아라리촌...그 옛시절로 떠나는 시간여행

       

       서툰 여행가족들의 보금자리였던 가리왕산 휴양림에서부터는

        이제 온전히 집으로 내겨가는  과정들입니다.

        집으로 가는 시간만으로도 만만치 않을 거리 입니다만...!

        놓치지 않고 싶은 여행지들을 잠깐 잠깐씩이나마 눈도장들은

        찍고 가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입니다.

 

        멀리까지 큰 맘 묵고 떠나온 강원도 겨울 여행길..!

        이곳 저곳 욕심껏 둘러보고 싶지만 시간적으로나 시기적으로 썩 마땅치를 못한것은

        겨울여행의 어쩔수 없는 한계들에 많이 부딪혔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 와중에도.. 정선의 옛 주거문화를 재현한 아라리촌을 아침 찬기운으로 둘러보는 것으로

        멀리 남도 끝자락인 여수  집으로 가는 첫 출발을 시작합니다.

       

          사진 : dolpak  글 : 아라리촌 관련 소개 자료 및 백과사전 참조

 

 

 

 

 

정선 아라리촌

정선 아라리촌은 잊혀져 가는 지역의 생활모습을 되살리고자 정선지역의 생활을 그대로 옮겨 재현해 놓은 문화촌으로

조선시대 강원도 정선의 마을모습을 재현하여 직접 살아보고, 둘러보고, 경험해 볼 수 있는 체험학습장이다.

마을입구의 서낭당과 장승, 연자방아와 물레방아, 농기구 공방 등으로 과거 정선 사람들의 마을 공동생활과 생산활등을 알아보며,

강원도의 전통가옥인 굴피집, 귀틀집, 저릅집, 돌집 등을 통해 지역적, 사회적 특성에 따라 발달한 건축문화를이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활상을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도록 시대상과 계급적 특징을 반영하여 전시된 생활소품들은

정선 사람들을 보다 깊이 느끼며 상상할수 있게 하며 아라리 촌내 전래가옥은 정선 지역의 고가옥을 실측 및 고증을 거쳐 재현하였다. 

 

 

장승

장승의 기능은 첫째 지역간의 경계표 구실, 둘째 이정표 구실,

셋째 마을의 수호신 역할이다.  

길가나 마을 경계에 있는 장승에는 그것을 기점으로 한 사방의 주요 고을 및 거리를 표시하였다.

또한, 수호신으로 세운 장승은 이정표시나 ‘천하대장군’ 의 표시가 없으며,

대신 마을의 신앙 대상으로서 주로 액병(厄病)을 빌었다.

 

 

 

 

 " 무능한 양반? "

 아라리촌내 건물사이사이에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이야기를 '무능한 양반?' 이라는 테마로

 18세기 당시 양반의 무능력과 부패상을 폭로하고,동시에 관리들의 횡포를 풍자와 해학으로 고발하는

양반전 인물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와가 [瓦家] : 기와로 지붕을 이어 올린 집.

양반가의 전통 가옥으로 안채와 사랑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주인의 일상거처이자 가사의 중심이였던 안채는 안방, 건넌방, 작은방과 대청, 마루방(제실), 고방,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바깥주인의 학문탐구와 손님접대의 공간이였던 사랑채는 두개의 사랑방과 마루방, 문간방, 부엌,

그리고 대문간,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었다.

굴피집

안방, 사랑방, 도장방과 대청, 정지(부엌), 외양간으로 구성된 원시형 산간지방 가옥으로

정선, 강릉, 양양, 평창 지방의 마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굴피집은 참나무(상수리나무)껍질인 굴피로 지붕을 덮은 집으로서

보온이 잘되고 습기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매우 춥고

여름에는 비가 많이 오는 기후에 안성맞춤이다

 

 

 

 

 

 

 

 

 

 

 

굴피집 차림표...주막

다양한 가옥들을 지나면 나타나는 휴게공간인 장터와 놀이마당에서는

조선시대의 토속적 분위기를 느끼며 흥미로운 체험을 해 볼수 있다.

        연자방아(硏子-)

연자매라고도 하며, 말이나 소가 절구 위에 있는  돌을 끌어서 돌려 곡식을 빻도록 돌려 곡식을 빻도록 만든 방아이다.

 

 

 

 

 

 

 

 

 

 

귀틀집(木頭房) 

: 통나무를 정자형(井字形)으로 양 귀를 맞추어 쌓아올려 벽을 만들고 그 위에 지붕을 얹은 집으로

 목재가 풍부한 산간지대의 주민들이 짓고 살던 원시주거의 한 가지로 안방과 윗방 정지 헛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껍질을 벗긴 통나무를 우물정(井)자 모양으로 쌓아 올려 벽체를 삼으며 나무 틈새는 진흙으로 메워 짓는다.

많은 적설량에도 견딜수 있고 온도유지가  용이할뿐 아니라 간편하게 지을 수 있어 산간지대의

화전민들이 오래 전부터 이용하여 왔다.

 

지방에 따라 방틀집·목채집·틀목집·투막집 등으로 불린다.

주로 산간지역의 화전경작지 취락에 분포한다.

지역적으로는 개마고원, 낭림산맥의 삼림이 풍부한 북부지역,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한

강원도 산간지방, 지리산 주변 소백산맥 일부지방, 울릉도 등에서 발견되나 중부 이북의 산간지대에 특히 많다.

재료로 쓰이는 통나무는 지름이 15~25㎝이며, 그 양쪽 끝에 홈을 내어 십자형 결구(結構)가 되도록 한다.

이런 방식으로 네 귀퉁이를 맞추어 차례로 쌓아올리고, 나무 사이의 틈새는 진흙으로 메워서 바람을 막는다.

귀틀집의 평면 구성은 방 2칸과 부엌 1칸의 3칸 형식, 또는 부엌 끝 쪽에 가축의 우리를 덧붙인 4칸 형식이 보편적이나,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지붕의 재료로는 주로 너와·새·굴피·화피 등이 사용되며, 까치구멍·우진각·맞배 지붕 등의 여러 형태가 있다.

 

너와집 (느에집)

                                      너와는 지붕을 덮는 데 쓰이는 재료로서 지방에 따라 '느에', '능에' 또는 '너새'라고도 부른다.

 너와로 이용되는 나무는 결이 바르고 잘 쪼개지는 것으로 지름이 30㎝ 이상 되는 것이 적당하다.

너와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보통 가로 20~30㎝, 세로 40~60㎝, 두께 4~5㎝이며, 수명은 10~20년이다.

너와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무거운 돌을 얹어놓거나

 '너시래'라고 부르는 통나무를 처마와 평행되게 눌러놓기도 한다.

너와집은 삼림이 울창한 산간지대나 화전지역에 분포한다.

지역적으로는 개마고원을 중심으로 한 함경도지역, 낭림산맥·강남산맥 일대의 평안도 산간지역,

 태백산맥 일대의 강원도 산간지역, 울릉도 등지에 분포한다.

지역에 따라 형태나 구조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평면상으로 홑집과 겹집, 지붕의 형태로는 우진각·합각·박공 지붕 등이 있으며,

벽체의 구성재료로는 귀틀집·판잣집·토벽집 등으로 구분된다.

 너와집은 환기와 배연이 잘 되고, 단열·보온 효과가 뛰어나 한서의 차가 심한 산지기후에 적절한 가옥 형태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신리에 남아 있는 몇 채의 너와집이 중요민속자료 제33호로 지정되어 있다.

 

농기구공방

농기구공방은 농업에 필요한 각종 기구(연장)를 제조, 수리하는 공간이다.  

 

통방아

통방아는 ‘물방아’ 또는 ‘벼락방아’라고도 하며, 확(곡식을 넣는 돌 통),

공이(찧는 틀), 수대등으로 구성된다.

3-5㎝ 정도의 커다란 통나무를 이용하여 앞쪽에는 공이를 박고,

뒤쪽은 물이 담 길 수 있도록 구이통을 판다.

귀대를 통해 구이통 속으로 흘러 들어온 물에 의해 공이가 올라가고 내려가면서

확에 있는 곡식을 찧게 된다


서낭당 [― 堂]  성황당(城隍堂 )

  : 마을의 수호신인 서낭을 모신 신당(神堂).

서낭당은 마을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곳이다. 가정의 안녕이나 자식들의 무운장수 , 입신출세를  기원하는 장소로써   마을신앙의 모태가 되는 민간무속의 중심지이다.

일반적인 서낭당의 위치는 마을이 시작되는

진입로 가장자리나 이웃마을과 연결되는

고갯마루 주변이며 장승이나 벅수와 함께

세워져 있다.

 

 

 

서낭당의 명칭은 지방에 따라 선왕당·천왕당·국수당·국시당 등으로 불리며 한자로 표기하여 성황당(城隍堂)이라고도 한다. 서낭당은 보통 마을 어귀나 고개마루에 원뿔 모양으로 쌓은 돌무더기와 마을에서 신성시되는 나무(神樹) 또는 장승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형식은 5색 헝겊을 걸어놓은 서낭나무와 돌무더기를 쌓아놓은 누석단(累石壇)이 결합된 것이 일반적이나 누석단 또는 서낭나무만으로 구성되기도 한다. 이밖에도 서낭나무와 당집이 함께 있거나, 입석(立石)의 형태인 것도 있다.

서낭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으나 한국 전래의 천신(天神)과 산신(山神)이 복합된 것으로 여기에 중국에서 유입된 성황신앙(城隍信仰)이 융합되었다고 한다.

성황신앙은 성읍의 둘레에 못을 파놓고 그 못에 깃든 신(神)이 성읍을 지켜준다고 믿는 풍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중국에서는 송대(宋代) 이후 보편화되었다.

이 성황신앙이 재래의 서낭신앙의 마을수호라는 기능과 일치하고 서낭과 성황의 발음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서로 혼합되어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서낭당은 지역간의 경계를 표시하거나, 전쟁시 석전(石戰)에 대비하여 쌓아놓은 돌무더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이와 같은 실제적인 기능보다는 마을수호·액운퇴치·소원성취 등을 기원하는 민간종교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서낭당과 관계된 것으로, 서낭나무에 입던 옷의 저고리 동정이나 5색 헝겊 조각을 걸고 치병과 무병장수를 기원하거나,

새 집으로 이사할 때 옛 집의 잡귀들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옷을 찢어 걸어놓기도 하는 속신이 있다.

 이밖에도 서낭당을 지날 때에 누석단에 돌 3개와 솔개비를 얹어놓고 침을 3번 뱉은 다음 왼쪽 발꿈치로 땅을 3번 구름으로써

 행로의 안전과 행운을 기원하는 등 민간에서 전해지는 여러 가지 형태의 풍속이 있다.

서낭당에 올리는 제의(祭儀)에는 마을수호와 질병의 예방을 위하여 마을굿의 형식으로 해마다 지내는 서낭제와

잡다한 개인적 소망을 기원하는 개별적인 제의가 있다.

또한 서낭신은 무속에 수용되어 무신(巫神)의 하나가 되었으며 서낭굿이 굿의 한 마당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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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TIP : 와가, 너와집, 돌집등은 사계절 이용이 가능하고

굴피집, 저릅집, 귀틀집은 하절기에만 사용가능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