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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진 지리산 이야기/가보자,지리주능

빗점골...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숨은 계곡

  빗점골...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숨은 계곡    

빗점골은 지리산의 수 많은 골짜기 중에서도 가장 깊고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계곡 중의 한곳으로 

이 계곡을 더 깊이 들어가면 절터골과 산태골, 왼골이라는

 이름으로 분지를 하여  더욱 깊은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의신마을에서 삼정마을까지는 3km 거리로 벽소령 작전도로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가 연결되어 자동차로도 쉽게 접근할수 있으며 본격적인 산행은  

  삼정에서 벽소령으로 가는 임도를 따라서 시작을 한다.

 

  임도를 따라 30분쯤 오름하게되면 빗점마을 흔적이 있는 이현상 최후격전지였다는

  흐른바위를 만날수 있는데 이곳에서부터는 지리산의 숨은 비경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1. 산행 장소 :  지리산 빗점골

       2. 산행 일시 : 2012 . 05월 06일(일요일)

       3.산행 코스 : 삼정마을 - 빗점골 - 왼골 - 토끼봉 - 명선봉 - 명선남릉 - 빗점골 - 삼정 

       4. 산행 지기 : 지 혼자서...!

      5. 준비물 :

            - 40리터 베낭, 스틱, 바람막이자켓, 여벌등산 , 선글러스

            - 물 500 리터 1병, 막걸리 2병, 김밥 2줄,  라면1봉(버너 ,코펠)

            - 등산지도 , 비상약품, 카메라 (니콘 D700, 24-70, 50mm micro)                                                       

      6. 이동 수단 : 돌팍 지 자동차

      7. 오늘의 날씨

            -  날씨 맑고 구름한점 없는 여름같은 더운 날씨           

      8. 특징적 산행 메모  

           -  선유동 수달래를 볼것인지...아님 진즉부터 가보고 싶었던 남부군의 궤멸장소였던 빗점골을 가볼것인지....    

          -   아침의 게으른 출발로 인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는 빗점골 선택을 하게 된 산행..ㅎㅎ             

          -  역시 혼자하는 산행은 늘 차분하고 부담없어서 좋다.

                   

 산행지도 및 길 찾기  산행 일지
  
   07 : 30  여수 집 출발  09 : 00  삼정마을
  09 : 30  이현상 최후격전지(흐른바위)
  10 : 25  왼골 들머리
              잠깐 휴식 및 아침, 막걸리
  11 : 30  물줄기 끝지점(계곡 최 상류)
  12 : 20  토끼봉
  13 : 05  총각샘
  13 : 30  명선봉
  14 : 20  명선남릉 하산시작
  15 : 05  바위 전망대 위 소나무
  15 : 30  이현상 아지트
  15 : 38  이현상 최후격전지 (흐른바위)
  16 : 00  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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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길찾기 (지도는 클릭하면 원본으로 볼수 있음)
 - 빗점골은 절골, 산태골, 왼골의 물줄기가 모여서
    빗점골을 이룸
 - 삼정에서 흐른바위까지는 30분 정도 소요됨
 - 흐른바위에서 너덜지대로 이어지는 능선 오름길은
    명선남릉 오름길의 들머리임
 - 흐른바위 바로옆(명선남릉 들머리부분)이 절골임
 - 이현상 격전지(흐른바위)에서 명선남릉 들머리
    지나서 산태골가는 거리는 아주 짧음( 5분거리쯤)
 - 산태골은 주능에 위치한 총각샘으로 올라설수 있음
 - 산태골에서 왼골 들머리(오름길)은 1시간정도
    계곡치기(혹은 희미한길도 보임)를 해야 됨
 - 왼골은 토끼봉까지 3시간정도면 소요 될듯 함
 - 왼골 산행길은 물줄기를 대부분 따르고 시그널
    흔적 따르면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음
 - 의신에서 삼정까지는 자동차로 진입 가능
 - 덕평남릉은 1시간 30분이면 충분히 내려올수 있음
 삼정 - 빗점골 - 왼골 - 토끼봉 - 명선봉 - 명선남릉 - 빗점골- 삼정마을   총 소요시간 : 7 시간 00분

 

빗점골은 

주능선상의 명선봉(1.582.6m) 과 삼각고지 사이에서  흐르는 "절터골" 과

명선봉에서 바로 남쪽 아래로 흐르는 운데 골짜기인  "산태골"

그리고 토끼봉 아래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는"왼골"이 모여서 만들어진 곳이다.

이 빗점골은  다시 대성골 과 합수 되면서 화개천이 이루고  마지막에는 섬진강으로 합수를 하게 된다.

화개골의 총 연장은 28km이며  지계곡은 빗점골, 오리정골, 덕평골.대성골(큰새개골, 작은새개골,수곡골 ) .

연동골.범왕골. 단천골.내원골.고사골(선유동골)등이 있다.

 

       절터골을 따라 오르면 연하천 산장 또는 삼각봉으로  연결되는데 그 거리는 대략 8km에 이른다고 한다.

       산태골은  명선봉과 또는  총각샘으로 연결되며  나머지 하나인 왼골은   토끼봉으로 연결된다.

      

▲ 벽소령 산장에서 하산하면 만나게 되는 마을인  삼정

오늘 오름 할려는 빗점골중 왼골은 이현상 최후 격전지인 합수내 흐른바위에서 절골을 바로 건너고,

명선남릉 초입을 왼쪽으로 꺽어돌면 산태골과 왼골로 오를수 있는 희미한 흔적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수 있다.           산태골은 절골에서 바로 근접해 있고 왼골은 계곡을 따라서 한참을 더 올라야 만날수 있다.

     

 

 

" 그 이현상이 빗점골 어디선가 사살됐다고 하던데요?"

빗점골 합수내 근처의 절터골 어귀에서 맞아 죽었다더군요

그 근처에 가면 지금도 귀신 우는 소리가 들린다해서 사람들이 잘 안가지요."

영감이 핀잔을 줬다.

"귀신은 무슨 귀신... 거기가 워낙 험한 곳이 돼서 자칫하면 길을 잃고 큰 고생을 하니까 사람들이 범접하지 않는 거지,"

사실 빗점골에서 주능선인 토끼봉으로 오르는 루트는 지금도 등산로도 나 있지 않은 전인미답의 비경이다.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 사령관이던  "공화국 영웅" 이현상은 그곳에서 그 전설적 생애를 마친 것이다.

 

- 이태의 남부군 중에서 일부 인용 -

 

지리산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남부군(빨치산)관련 시설물들

한때는 이것들이 반공이데올로기의 산 교육장으로 설치되었을듯 한데

언제부턴가 이 반공이데올로기가 시대의 정체성을 잃고 처절히 죽어간 남부군의 영혼처럼

지리산 깊은 골짜기마다에 방치된 영혼처럼 떠돌고 있는것은 아닌지...

 

지난 시대의 아픔이였건 , 아니면 반공 관련 산 교육장이였건간에

지나간 아픈 역사들의 흔적들을 공들여 만들어 놓고서

왜,  비법정 등로라는 이름을 붙여서 산행을 방해를 하는 것일까...?

지나간 근 현대사의 시대적 아픔들을 이제는 더 알리고 더 아파하고 더 많은 생각들을  해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암튼 오늘은 생각이 많은 초행의 산길을

그것도 지 혼자서 두려움도 뒤로한체  희미한 계곡의 사람 흔적들을 쫒아 열심히 올라봅니다.

 

남부군 빨치산  총사령관 이현상 최후 격전지
남부군 빨치산 총 사령관 이현상 최후 격전지
이 지역은 남부군 빨치산의 총수였던 이현상이
1953년 9월 18 일 오전 11시경 서남지구 전투결찰사령부
 제 2연대 차일혁 연대장 예하, 수색대장 000 이 이끄는 33명의 수색대와 교전을 벌이다 숨진 곳이다
이곳이 이현상이 최후의 순간을 맞았다는 합수내 흐른바위다.
합수내 흐른바위는  삼각봉과 연하천에서 흐르는 절터골과
명선봉(1586m) 토기봉에서 
흘러내리는 산태골, 왼골의
물줄기가 합쳐지는
지점에 위치한 넓다란 바위이다.
"지리산의 빗점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남부군"이다.
한 시대의 획을 그을만한 빨치산의 행적이 가장 극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면서 남부군의 처절한 궤멸과
붕괴가 시작된 
곳이  바로 이 빗점골인 것이다. 

군,경찰 토벌대의 빨치산 대 토벌작전시  대성동 계곡으로
토끼몰처럼 
쫒기던 남부군이 군 경찰의 무차별한
맹폭으로
실제적인 
남부군의 궤멸과 그 사령관 이현상이 최후를
맞이했던 곳이 
이곳 빗점골이였던 것이다.
아픈 우리 현대사의  가슴아픈  영혼들이  방황처럼 떠도는
곳이
이곳 빗점골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현상 최후격전지라기 보다는  이른바 빗점골 회의를 갖고
사령관에서 평당원으로 강등되며 그리고 그 자신이 최후의
순간을 아니, 마지막으로 사살되어 발견된 곳이  빗점골의
합수내의 너덜지대(합수내 흐른바위)로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남부군 총사령관이였던 이현상에 대하여 .....

                                                                                                         글 출처 :  이현상 평전  - 안재성

 

그의 전쟁은 끝났는가?

1953년 9월 18일, 지리산 반야봉 남쪽 빗점계곡에서 이현상은 목숨이 끊어진 채 발견됐다.

경찰이 그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목에 여덟 발의 총알이 박혀 있었다.

그를 호위하다 열흘 전에 경찰에 잡힌 김진영, 김은석은 시신을 보자마자 털썩 주저앉았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죽여주십시오.” 이들을 본 경찰은 지리산이 떠나가라며 만세를 불렀다.

이렇게 이현상은 비극적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껍데기만 남은 그의 시신은 부패하지 않도록 방부제를 넣은 후

서울 시내에서 ‘전시’되었다.

그의 시신이 지리산 인근 섬진강 백사장에서 화장된 것은 1953년 10월 8일, 죽은 지 20일이 지난 후였다.

그의 장례는 항일운동에 평생을 바친 그의 삶을 존중한 토벌대장 차일혁이 치렀다.

“이현상에게 더 잘 어울리는 호칭은 선생님이었다. (…)

적군이라도 교전 중이 아닌 이상 절대 죽이지 못하게 하고, 동지의 주검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던,

눈보라 치는 겨울 산중의 걸인 움막 같은 천막 속에서 추위에 떨며 홀로 책을 읽다가

스르르 지쳐 잠들곤 하던 영원한 선생님이었다.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아니었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혜택을 버리고

혁명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며 춥고 배고픈 산속에서 죽어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

인간에 대한 사랑, 민족에 대한 사랑, 약자에 대한 동정심과 인명존중의 정신이라는 거대한 수림이 없었다면

자기희생의 마음을 지켜갈 수 없었다.”

비록 이현상은 지리산에서 운명했지만 그의 영혼은 반세기 동안 계속 현신해 왔다.

나이 어린 시다들의 고통에 마음 아파하며 몸을 불살랐던 전태일,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다가 결국 죽음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저항했던 허세욱  등으로….

 이현상과 동료들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 합수내(흐른바위)에서 보이는 폭포같은 상단부

 

  

 

  서남지구 전투경찰대 제2연대장 차일혁 총경 

이른 아침 들판에 나가 
일하는 농부에게 물어 보라.

공산주의가 무엇이며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지리산 싸움에서
죽은 군경이나 빨치산에게 물어보라
공산주의를 위해 죽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죽었다 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

그들은 왜 죽었는지
영문도 모른다고 할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이 싸움에서 어쩔 수 없이 하지만
후에 세월이 가면
다 밝혀질 것이다.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 사이에 끼여 벌어진
부질없는 골육상쟁
동족상잔 이었다고
1953년 9월 17일 차일혁 부대는 지리산 빗점골에서 이현상을 사살하였다.
사살된 이현상의 시신은 경찰 간부들의 과잉 충성으로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서울로 운송되어 왔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죽은 시신은
보기 싫다고 거절하여
창경원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후 이현상의 시신은 화개장으로 돌아왔는데 친척들도 역적이라며 인수를
거부하였다.
차일혁 대장은 빨치산 토벌을 함께 한 전투경찰대 5연대장인
정인주 총경과 상의하여
이현상의 시체를 정중히 화장하기로 결정하였다.
 비록 공비의 괴수로서 국가를 혼란하게 하였지만 그래도 서로가 한판 겨루었던
상대로서 정중히
장례를 치루어 주는 것이 적장(敵將)에 대한 예우라
생각했던 것이다.

1953년 10월 8일 차일혁 대장은 2연대 본부 옆에 있는 섬진강 백사장에서
이현상의
시체를 화장하였다. 그의 유품인 염주도 함께 화장했다.
지리산 칠불암이 소각되고 주지가 피살되어 갈 곳이 없어 차일혁 부대에 몸을
의탁하고 있던 스님에게 독경을 부탁하였다



화장이 끝난 후 차일혁 대장은 이현상의 뼈를 자신의 철모에 넣고 M1 소총으로
빻아
섬진강 물에 뿌렸다. 그리고 차일혁 대장은 권총을 꺼내 허공을 향해 3발을
쏘았다.
그것은 이현상이 가는 길에 부치는 차일혁의 조사(弔辭)였으며,
지리산에서 숨져간
수 많은 원혼들에게, 초라한 모습으로 삶을 끝낸
이현상에게 보내는 조사였다.
그리고 다시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없기를 기원하는 그의 외침이기도 하였다.


 

 

일찍 출발하기로 한 오늘의 아침 산행...!

산행지기들과 마땅히 약속한 시간도 없던 것이라서  오늘은 맘껏 게으르고 뭉기적 거리는 시간이 길어졌던듯 싶다.

분명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할텐데....

누군가와 약속이 없는 혼자만의 산행이라는 것은 늘상 이렇게 게으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지리산 ...! 어디로갈까...?

일단 달리고 보자...달리다가 그 생각이 머무는 곳으로 발길은 따라가면 되는 것이고..ㅎㅎ

 

선유동골의 수달래가 눈앞에 선한것도 뿌리칠수 없는 유혹이고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한  빗점골이라는 곳도 

꼭 가보고 싶은  허기진 그리움이다.

특히나 빨치산을 이끌었던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과 그 부대였던 남부군의 현장을

직접 피부로 느껴보고 싶은 마음은...

처음 출발할적에는  아무래도 선유동의 수달래를 마음에 두었던듯 싶은데 

달리는 차속에서  자꾸만 빗점골이라는 단어가 떠나질 않는것이 

아무래도 선유동의 수달래를 포기 해야 할 모양인갑다.

봄이면 붉게  물들어가는  남부군의 핏물 흔적들..!

 우리 근 현대사의 가슴아픈  역사의 흔적들이나 이참에  더듬어 볼까..ㅎㅎ

게다가

아침의 게으름으로 인해서 선유동의 장시간의 산행도 부담스러운데...

 

빗점골의 빨치산으로 대변되는 남부군

우리 근 현대사의 이념적 이데올로기의 삐뚤어진 오해들..!

그리고 표면적으로 내새울수 없는  , 나름의 감추고 싶었던 역사의 현장들

반공 이데올로기로 대변되었던 빨치산 남부군의 자랑같은 흔적들

        이제는 이 반공이데올로기가 시대의  정체성을 잃고 

지리산 깊은 골짝에   폐허처럼 쓰러저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흉물스런 반공이데올로기들의 잔해들을 깔끔하게 철거를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아픈 역사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의 산 교육장이 될수 있도록 완전한 개방을 하든지..

참...모를 일들이다

 

 

이현상이 최후를 맞았다는 흐른바위에서 계곡을 따라
1시간쯤 오름한것 같다.
처음 생각은 산태골을 치고 올라서 지리산 샘물 중
단연 최고일것같은 총각샘으로 오르고 싶었는데...
잠깐 방심하던차에 들머리를 놓치고 말았다.

빗점골의 마지막 끝점일것 같으면서 합수점같은 이곳
이곳에서부터 왼골의 실제적인 시작은 아닌지...?

아침마저 굶고 찾아온 허기진 지리산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가야지 싶다.
허기진 배도 채울겸, 생명수 같은 막걸리도 한잔...ㅎㅎ
 
오늘의 혼자하는 산행길
여타한 지리산의 계곡들을 혼자서 오를라 치면은
왠지 등골시린 쭈볕함과 오싹한 전율들이 스며들곤 하던데
오늘은 먼 일인지....여타한 반응들이 없다. 

너무 힘들어서 그랬을까...?
 
아님 양지바르고 깊은 계곡이 아니여서 그랬을까...?
 
깊고 기나긴 계곡이면서도 막상 들어오면은
그 깊이감이 감쪽같이
느껴지지 않는 골짝이 이곳 빗점골이 아니던가..?

 

 

 

 

 

 

 

절골, 산태골, 왼골로 이루어진 빗점골 중
 왼골은 토끼봉의 숨가쁜  봉우리와 연결되는 곳이다.
이 급한 경사면에서도 물줄기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 것이 
                   희미한 등로를 더듬다가 길이 끊기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물줄기를 따르면 되고
다시 흔적을 찾으면 그 흔적들을 쫒아 오르면 되는것이다.
한시간은 물줄기 따라서

한시간은 희미한 시그널 흔적을 따라서..

토기봉으로 오름하는 오늘의 왼골 오름길은
다행히 큰 어려움없이 길 흔적들은 찾아낼수 있기는
하지만 숨가쁜 된비알을 치고 오르는 나약한 두 다리는
여전히  김 빠진 맥주마냥 쉽게 풀려버리곤 한다.
언제쯤에나 맘껏 튼실한 다리들을 가져 볼수 있을런지..ㅎ
가면 갈수록 허기지기만 한 지리산
갈곳은 많고 다리는 갈수록 부실해지고 있으니...
베낭에 잡다한 짐들도 덜어내고
걸신들린 창시들을 위한 먹거리도 포기하고..

나의 마지막 즐거움인 카메라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야트막한 동네산이나  찾아 떠나는 노인네 산행으로
바까 버릴까..ㅎㅎ

왼골의 힘겨운 된비알
너무 힘이 들면은 혼자하는 산행에서 느끼는
등골시린 전율같은 공포감마저도 잊어 버리는 것일까..?



 

 

 

 

 

헉...토끼봉의 봄은 인제서야 시작이구나

아직도 참꽃이 제대로 피여나질 못하고 꽃망울만 머금고 있다니...

아랫동네들에서는 한여름이 찾아왔다고 난리들이드만...크게 높지도 않은 토끼봉에는

아직도 봄은 한참을 더 기다려야 찾아올 모양이다.

 

간만에 조망해 보는 불무장등과 그 뒤로 보이는 왕시루봉능선들....!

왕시루봉은 그렇다치고

불무장등에서 황석산으로 이어지는 길고 지루한 능선은 언제 더듬어 볼끄나...!

 

 

 

 

 

   ▲ 지리산 피나물
      ▲  지리산 얼레지
5월 첫째주의 지리산 야생화들이다.
왼골 오름길에서 만났던 노란색의 피나물들
그리고
토끼봉 정상에서부터 시작된  주능에서 만났던
얼레지와 현호색들..!
말그대로 지천으로 널부러진 천상의 꽃밭이다.


주능에 얼레지가 이렇게 많았었던가...?
또 고개 바짝 치켜올린 종달새 모양을 한  현호색들도..!
한번 또 엎어져서 맘껏 담아볼까...


총각샘...!
예전에는 이 샘물 아주 유명했었는데...
지금은 흔적을 감추고 있으니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라나...!
   ▲  총각샘

 

 

 

 

 

 

 

 

 

▲ 가운데 길게 흐르는 봉우리가 토끼봉 그 오른쪽은 반야봉 , 희미한 왼쪽 뒷쪽으로는 왕시루봉

 

       

 

 

 

명선봉...!

대부분은 연하천 산장으로 지친 발걸음을 옮기느라 바빠서 명선봉을 놓치는 경우들이 많으리라.

아니 명선봉이 어디쯤에 있는지도 모를 일일까..ㅎㅎ

 

대성동과 광양 백운산을 눈앞으로 바라볼수 있고

영신봉에서 이어지는 남부능선을 한눈으로 조망할수 있는 이곳 명선봉

오늘은 이곳 명선봉에서 혼자만의 아주 가난한 밥상을 차린다.

스프 뿌린 생라면 한봉다리하고   생명수로 대변되는 막걸리 한병..!

이것이 멋진 조망들과 같이하는 초라한 밥상의 전부이다.

아...셔빠진 김치도 있었는데...꺼내보지도 못했네..ㅎㅎ

 

그나.... 이놈 막걸리..!

누구 말처럼 왠만한 거한 밥 한끼보다 더 중한 열량을 낸다는데

그게 허툰 말들은 분명 아니였던 모양이다.

다른 먹거리 없이 막걸리 몇병만 들고 다니면 하루의 산행 뱃심으로 충분하다나..ㅎㅎ

 

그 막걸리라는 것이,   지가 곡주라고 기막힌 뱃심을 자랑하는 것인가...! 

 

예서...한시간 가까이를 혼자서 노닐었던 모양이다.

 쌀 퍼담느라 정신없는 풍아저씨한테 문자를 보내도 답은 없고...

답이라도 와야지 빈정상한 자랑이라도 해 볼것을..ㅎㅎ

 

      

▲ 명선봉에서 보이는 대성동계곡과 남부능선

 

 

하산길은 
다른 선택없이 
명선남릉을 따른다.

급격하게 내리치는것이 큰 조망들은 없어 보이고
두어시간이면 충분히 내려 설수 있을듯 싶다.

짧은 구간에서 급하게 내려서는 이 등로...!
다리 풀린 사람들,  
나뒹굴기 딱 좋은 구간은 아닌지..ㅎㅎ






 

 

 

지리산 중 유독 큰 고목과 원시림이 없는 곳들이 몇군데 있다.

오늘 걸음해보는 빗점골이 그렇고

세석으로 오르는 대성동 계곡과 새개골들, 그리고 남부능으로 올라서는 수곡골이 그렇다.

남부군(빨치산)에 대한 군 경찰의  토벌작전시 이쪽 대성동과 빗점골쪽으로 몰려드는 남부군을

삼일 밤낮으로 맹폭을 퍼부었다고 한다. 아비규환의 불바다처럼...

해서 ...이쪽 구간들에서는 지리산 특유의 큰 고목과 원시림이 없다고 한다.

 

 

인제 다시 철옹성 같았던   이현상 아지트를 만나는 것을 끝으로

오늘 산행도 마무리를 해야겠다.

 

인터넷에 떠도는 남부군 관련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인용해 보면서..

 

궤멸하는 남부군

우리 남부군의 운명이.... 영예로운 전통을 가진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의 흥망이 오늘밤 여러 동부들의 손에 달렸오...

사령관의 목이 메이는듯 짤막한 훈시를 했다.

일찍이 볼수 없었던 비장한  분위기가 조용히 감돌았다. 이들이 봉쇄선을 뚫고 얼마간의 식량을 구해오는데 성공한다면

남부군은 다시 소생하여 전력을 회복할수 있겠지만  만일 실패한다면 속절없이 눈속에 갇혀 얼어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남부군이 가진 마지막 전력인 40여명을 그 도박에 몽땅 걸어 보는 것이다.

야습대가 행군을 시작하자 잔류대원들 속에서 나직한 합창소리가 일어났다.

 

용사들 가는 길 , 승리의 깃발 휘날려 나부끼노라

우리의 조국은 민주의 성채 , 지키자 인민의 자유를...

 

사령관 이현상이 눈시울을 벌겋게 하고 눈발 속으로 사라져 가는 야습대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억지 웃음을 지으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렸다.

어째 승리의 노래 " 가 용장하질 못하고 비장하군

이제 봄이 머잖았어, 해동이 되고 잎이 피면 야산에 내려가 초모사업을 해서 재기할수 있게 된다.

그땐 동무들 흰쌀밥에 소도 잡아서 실컷 먹게하구 푹 쉬도록 할테다.

약을 구해다 동상도 말끔히 치료하구 말야

눈은 오지만 봄은 인제 머잖다....."

 

" 이태의 남부군" 중 일부 인용함

 

남부군 빨치산 총사령관 이 현상 아지트
이곳은 이현상의 이지트로 활용된 곳으로 외부에 대한 조망이 쉽고 바위, 소동굴, 산죽, 수목등이 어우러져 아지트로서의 조건을 모두 지니고 있는 곳이다.
이 지역은 이현상의 빨치산 부대가 토벌대의 수색 및
공격을 피해 바위를 이용한 동굴, 비밀아지트, 움막등을
설치하여 지휘본부 주둔과 경계임무를 겸한 이현상의
중요한 아지트로서 토벌대의 강력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천혜의 요새로서 장기간 동안 게릴라전을 벌인 곳이다.
산자가 먹은 죽은자의 밥
식사중에 급습을 당한 모양으로 셋이 다 입에 밥을 물고
있고 밥이 담긴 냄비가 근처에 뒹굴고 있었다.

밥도 얼기는 했으나 상한것 같지는 않았다.
대원 한사람이 그 밥을 손으로 움켜 입에 넣자
일제히 벌떼처럼 달려들어 눈속에 흩어진 밥알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주워 먹어버렸다.
그 다음에는 시체의 입술에 묻은 밥알까지 말끔히
거둬 먹어버렸다

아마도 동무들은 대대장이 불을 피워도 좋다니까
마음놓고 불을 피우다 이 꼴을 당했을 꺼다.
간부를 태산처럼 믿기 때문이다.
지휘관은 항상 백분의 일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 할 줄
알아야 하는 건데...
결국 대대장 한사람의 실책으로 이 여려 대원들을 죽인 거다.
미국을 다 준다해도 바꿀수 없는 공화국의 보배들을 말이다. 그래서 간부의 책임은 말할수 없이 크고 무겁다는 것이
아닌가....

그 이현상도 얼마 후 바로 그 근방에서 최후를 마칠 운명에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는 사람은 물론 아무도 없다.  
이태의 남부군 중에서 (궤멸하는 남부군 )

        벽송능선길의 빨치산 이야기 :http://blog.daum.net/dolpak0415/1176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