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정산, 영원령부근의 와운마을 조망바위(어떤 산님들은 당신들 나름, 와운카페라고도 함), 멀리 보이는 곳은 반야봉
지리산 칠암자 탐방산행
☞ 산행코스 : 휴양림~도솔암~영원사~삼정산~상무주~문수암~삼불사~약수암~실상사
☞ 도상거리 : 약 16Km, 산행시간 : 약 9시간
지리산 주능선을 관망하는 최고의 전망대로써 남부능선의 삼신봉이 있다면
중북부능선상에는 삼정산이 있어서 지리산의 주능들을 깔끔하게 조망할수있다.
지리산자락에 있는 봉우리이면서 ‘봉(峰)’ 이 아닌 ‘산(山)’자를 쓴 삼정산은 중북부능선의 얼굴마담 역할을 한다.
중북부능선은 남북으로 확 트인 화개동천과 만수천, 임천을 시원스레 내려다볼 수 있는 산줄기로써
주능선 삼각봉에서 시작돼 영원봉 삼정산을 거쳐 인월 실상사 앞 만수천에서 끝난다.
이 능선은 경남과 전북의 경계를 이루며 한쪽으로는 크고 널따란 망대골을 빚어내며
또 한쪽으로는 와운골과 뱀사골로 흘러내리게한다.
중북부능선의 또 다른 자랑은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숱한 불적들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지리의 선경과 지리산 천년불교의 발자취를 느껴보는 심오한 능선이기도 한 이곳은
현재 3개의 사찰과 4개의 암자가 자리하고 있어 이곳을 돌아보는 산행코스가
나름대로의 의미를 새기며 지리산꾼들 사이에서 성행하고 있다.
도솔암-영원사-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약수암-실상사를 잇는 산행이 이것인데,
가을이 지나가는 낙옆쌓인 삼정산자락의 7개 산사를 둘러보는 차분한 산행도 꽤나 멋스럽지않을까 싶다.
산행코스는 삼정리에 자리한 지리산자연휴양림에서 시작, 음정동 작전도로로 올라 삼거리에서 중북부능선에 합류한다.
그리고 도솔봉부터 차례로 영원사-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약수암을 거쳐 실상사에서 산행을 마무리 하면된다.
※ 참고로 지리산이면서 봉이 아닌 산자를 사용하는 곳은
중부능선상의 삼정산, 서북능선상의 덕두산, 황금능선 끝자락의 구곡산, 등이 있다.( 또 있나...?)
<도솔암>
영원사의 속암으로 이곳은 영원사에 유명한 방광사리탑을 남긴 청매스님의 수도처로 유서가 깊다.
영원사와 함께 전란에 잿더미가 됐다가 최근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돌 자갈이 깔린 도솔암은 마땅히 들어 갈 다른 문은 없고
나무작대기 2개가 자물쇠 역할을 하는 사립문이 걸려있다. 사립문을 통과하면 해우소와 창고(?) 좌측에 샘터가 있으며 우측으로
돌계단을 오르면 도솔암의 본채가 있다.
마당이 넓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지리의 조망도 일품이다
<영원사 靈源寺>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지리산 중턱 해발 920m에 위치한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시대 고승이었던
영원대사가 건립했다고 하여 절 이름도 영원사라고 한다. 한때 내지리(內智異)에서는 제일 큰 사찰이라고 했다.
이 절 규모는 너와로 된 선방(禪房)이 9채에 100간이 넘는 방이 있었으며, 이곳에서 도를 닦은 고승이 많았다고 한다.
고승들이 스쳐간 방명록이라고 할 수 있는 조실안록을 보면 부용영관(芙蓉靈觀), 서산대사, 청매(靑梅), 사(四溟), 지안(志安),
설파(雪坡), 상언(常彦), 포광(包光)스님 등 당대의 쟁쟁한 고승들이 109명이나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는 기록이 있다.
영원사가 그 위용을 잃게 된 것은 여수 반란사건 때 반란군이 아군의 공격에 쫓겨 이곳까지 찾아와 절터를 아지트로 삼으면서,
건물 등을 작전상 모두 불태워 없애면서부터다. 그 후 1971년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이곳에는 많은 부도들이 있는데 원당형의 둥근 석탑이 5기가 있으며, 대는 2층 탑신을 가진 조립형으로 되어 있다.
이들 부도들은 영원사의 유물로 추정되며 영암당탑, 설파당탑, 중봉당탑, 청계당탑, 벽허당탑, 청매탑 등 이름 있는 스님들이
수도하던 곳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고승의 호를 딴 부도들이 있다.
엽송설화 30권을 기록했다는 구곡각운대사의 사리를 보존했다는 상무주암의 필단사리 3층 석탑이 방광(放光)했다는 이야기 등도
지난날의 유서 깊은 영원사의 선풍(禪風)을 말해주고 있다.
<상무주암 上無住庵>
부처님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경계(上)이고, 머무름이 없는 자리(無住)라는 뜻이다. 지리산 영원사의 末寺(말사)로써 삼정산 아래
위치한 상무주암(上無住庵)은 고려시대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창건하고 큰 깨우침을 얻은 곳이며 고려때 지눌선사가 2년여
머물렀다는 곳이다. 그러나 별다른 부속건물도 없고 단정한 시골집 별채의 참선수도 암자에 불과한 것 같은데 오히려 산중의
호젓한 별장 같은 느낌마저 드는 곳이니 무릇 사찰이 위치한 곳은 역시 명당인 양 인간속세를 벗어난 듯한 무릉도원 같다.
<문수암 文殊庵>
문수암에는 도봉스님이 84년부터 23년째 수행하고 있는 절이다. 석축위에 아담하게 세워져 있는 문수암 옆에 거대한 석굴이 있는데
석간수를 받아내는 샘터도 있다. 이석굴은 임진왜란 때 마을 사람 1000명이 피난하였다고 전하는 천인굴(千人窟.. 일명 천용굴)이라고 하나 아직 굴의 크기나 전설, 생성 유래에 대해 정확히 조사되지 않은 채 있다고 한다.
도봉스님은 이 굴에 대한 소문(?)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천인용굴(千人用窟)이라 하여 천년동안(즉, 오랫동안) 사람들이 이 굴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삼불사 三佛寺>
비구니 사찰인 삼불사는 절이라기보다는 깊은 산속 산골마을의 고향 집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백구(개 이름)가 산속의 적막을 깨우고 좌측으로 몇 걸음 가면 양철판으로 덮어놓은 샘터가 있다.
삼불사는 조선시대 창건한 절이라는데 정확한 기록은 없다. 지금은 비구니의 참선도랑으로 초라한 여념집 모습을 하고 있는
고지대의 절이다.
<약수암 藥水庵>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번지 ; 지리산 줄기의 작은 산중턱 1㎞ 지점에 위치해 있다. 1937년에
함양(咸陽)의 불자 한정희(韓貞熙)의 시주금으로 중수하였으며, 1974년에 운영(雲榮) 비구니 스님의 두 번에 걸쳐 중수하였다.
경내에는 항상 맑은 약수가 솟아나는 약수샘이 있어 약수암이라 했다고 한다
<실상사 實相寺>
신라 흥덕왕 3년 (828년)에 증각대사님이 9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산문을 개산하면서 창건했다.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가 버린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절을 세웠다고 전한다.
정유재란 때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조선 숙종 26년(1700년)에 다시 지었으나, 고종 19년(1882년)에 거의 불타 버려 일부만 남게 되었다. 현재 통일 신라 시대 작품으로 국보 제10호인 높이 약 5m의 백장암 3층석탑과 보물 11 여점을 포함 단일사찰로는
가장 많은 17점의 지방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양정마을-0.37km-영원사들머리-0.36km-음정마을갈림길-1.21km-바리게이트-1.1kn-지표목(13-05)-0.2 km-도솔암들머리- ? -도솔암-1.9km-영원사-0.75km-빗기재-1.05km-상무주암-1.0km-문수암 -0.8km-삼불사-0.7km-청성재-2.0km-약수암-1.5km-실상사-0.35km-실상사매표소 - 음정마을에서 작전도로 따라 1km 오르면 차단막이 있고 좌측에 지리 13-05번 구조목이 있고 , 다시 여기서 150m 가다가 우측으로 오르는 작은 오솔길이 있는데 , 이곳이 도솔암 가는 길이다. 노거수도 지나고 너덜길도 지나면 도솔암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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