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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싶다

강진 백련사

          앞전에 잠깐 들렀었던 백련사와 다산 초당..!

      남겨둔 사진들이 몇장 더 있어서 백련사 홈페이지의 자료들을 빌려와서 간단한 정리를 했습니다.

백련사의 역사

백련사의 원래 이름은 만덕사로 신라 문성왕때 무염국사(801-888)가 창건했다고 전해온다.

1211년(고려 회종7년)에 원묘국사 요세(1163-1245)스님이 옛터에 중창하고 백련결사로 크게 이름을 날려 백련사로 불리게

되었다. 고려후기 정치와 종교가 제 기능을 상실한 채 몽고와 왜군의 침략으로 살육가 눈물로 점철된 고난의 시대에 요세스님은 어움의 한 가운데서 온 몸으로 희망을 말하고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는 결사운동을 벌인다. 이렇게 태동된 백련결사는 삶속에서 민중들과 함께 참회와 염불수행을 통해 현세를 정토로 만들자는 최초의 민간 결사 운동이였다.원묘국사의 백련결사는 120년간 고려 8분의 국사(원묘국사,정명국사, 원환국사, 진정국사, 원조국사,원혜국사,진감국사, 목암국사)를 배출하고 번창하였다.

고려사기를 보면 공민왕자가 1351년(충정3년)에 백련사에 살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사찰은 고려말 왜구가 세 차례나 침입하여

노략질을 일삼았을 때 폐허지경에 이르렀다. 이후 1430년(세종12년)에 행호대사가 효령대군의 후원으로 동원 20동과 서원4동을 건립하고 왜구의 침입에 맞서 행호토성을 쌓는다. 세종의 둘째형인 효령대군은 백련사에 입산하여 8년간 큰 법회를 열고 불,법,승 삼보에 기원하는 수륙재를 지매며 수행을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백련사는 청허 호정선사의 의발을 전수받은 8명의 종사(소요대사,해운대사, 취여대사, 화악대사, 설봉대사, 송파대사, 저암대사,연파대사)를 배출하며 이어져 내려왔다. 백련사에 8국사와 12종사가 나온다고 하였는데 8국사는 고려때 나왔으며

8종사는 조선시대 배출되었으니 앞으로도 4종사가 나올 것이라는 예언이 있다.  그 가운데 여덟번째가 다산 정약용과 교류하던 아암 혜장선사로 두륜산 대흥사에서는 12대 강사로 꼽힌다. 백련사 옆 다산초당에 적거했던 다산 정약용은 백련사에 자주 들러 차를 마시며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고 한다.

    

        백련사 바로가기(홈페이지)  http://www.baekryunsa.net/

 


 

 

 

 

 


 

만경루(萬景樓)

 

멀리 보이는 푸은 바다 티끌 없는 거울이네

울 옆의 긴 대 바람에 소리내고

난간 앞의 그윽한 곷 눈 속의 봄이라

 

조선 성종대의 문신 김유가

백련사 만경루에 올라 쓴 시다.

만경루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누각이다.

만경루에서 바라보는 백일홍 너머

 구강포 앞 바다는 아름다울 뿐 아니라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겨난다.

 

 예전에는 스님들이 만경루를 선방삼아

수행을 했고 지금에는 템플스테이 수련공간으로 쓰이면서 백일홍이 활짝 피는 날

만경루에서 우리음악 듣기 등의 문화행사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는 귀중한 누각이다.

 

 

◀ 망경루에서 보이는 강진만 구강포로 백년 이상의 나이를

    먹은 백일홍이 만개할때 보이는 풍경은 가히 일품이다.

    지금은 예전의 소담스럽던 풍경은 없어지고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했으며 , 백일홍이 만개할때 문화행사도 한다고

    한다.


 

 

 

 대웅보전, 만경루, 모두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대웅보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136호)

1760년 큰 불이 일어나 대웅보전이 소실되지 월인당 총신 스님은

왈찰, 지정, 혜철, 태화, 신징, 규연, 찰연, 윤철연징, 붕관스님 등과함께 대웅보전 중건에 서원하고 시주를 모아

 이듬해 4월 8일 불사를 시작해서 1762년 4월 13일대웅보전을 완성합니다.

 새로운 법당에 모셔진 삼존불(아미타불, 석가모니불,약사여래불)은 1710년에 목조로조성된 부처님으로

얼굴에 드러난 온화한 미소는 당시 불상을 조각했던 조선사람들의

순박하고 지극한 마음을 시대를 넘어 느낄수 있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법당내부에는 아름다운 벽화와 조각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어 옛 선조들의 아르다운 신앙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삼성당 올라가는 계단과 삼성당 앞에 있는 베롱나무

 

 

 

 

 

삼성당

삼성당에는 독성탱화와 칠성탱화, 그리고 1931년에 그려진 산신탱화가 모셔져 있다.

삼성당은 불교가 한국의 민간신앙을 받아들여 만들어진 전각으로 만덕산 삼성당은 예로부터 큰 인물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자손들을 위해 기도를 하는 부모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산신탱화는 소화 6년 일제시대때 그려진 것으로 소나무 아래 부채를 들고 있는 산신령과 까치 오랑이 ,

그리고 지팡이 끝에  물병을 매달고 있는 동자그림이 매우 민화적이고 친근한 느낌이 든다.

          ▲ 삼성당 앞에서는  백련사 기와지붕위로 강진만의 구강포와  멀리 천관산을 바라볼수 있다.

 

 

 

 

 

 

 

 

 

 

부도가 있는 동백숲

천연기념물 제 51호로 지정된 동백나무 숲 안에는 고려, 조선시대의 부도가 곳곳에 숨박꼭질하듯 흩어져 있다.

부도란 스님들이 열반에 들면 다비식을 해서 나온 사리를 모셔놓은 탑이다.

동백숲 안에는 원묘국사증진탑인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3호인 강진백련사원형구형부도,

대웅보전을 중수하신 월인당 총신 스님의 부도,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2기의 부도가 있다.

또한 웅진전 앞에 춘파당 부도, 절 입구 축대위에 부도,  명부전 앞에 부도의 잔해가 남아 있다.

 

 

 

동백숲 부도와 다산초당 가는 길

백련사의 자랑은 무엇보다도 천연기념물(제151호)로 지정된 동백나무

숲이다.  사적비 옆 허물어진 행호토성 너머에 아름드리 동백나무들이숲을

이루고 서 있는데 3,000여 평에 달하는 숲 안에는

고려, 조선시대의 부도 네기가 숨박꼭질하듯 흩어져 있다.

숲속은 사시사철 푸르고 두터운 잎으로 인해 대낮에도 고즈넉한 분위기다.

11월부터 동백꽃이 피어서 3월 만개하면 고즈넉한 숲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고, 그 꽃이 통째로 떨어져 바닥을 수 놓으면

처연하다 못해 울컥 눈물을 쏟으리만치 가슴 저미는 감동을 안겨주는 곳이

이곳 동백나무 숲이다.

이 숲속의 부도 중 이름이 알려진 부도는 월인당 부도뿐이다.

이름도 없이 동백나무 처럼 세월의 흔적만 남긴 부도는 무상의 이치를 설하는 큰스님들의 소리없는 가르침 같다.  이 동백나무 숲을 지나 다산 초당가는

산책길에는 백련사에서 재배하는 차밭과 야생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아암 혜장 스님과 다산 정약용 선생님은 서로 유학과 불교를 주고 받으며

아름다운 차 인연을 맺는다. "나그네는 요즘 차름 탐식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겸하여 약으로 삼고 있소" 로 시작하여 "듣건대 죽은 뒤 고해의 다리 건너는 데 가장 큰 시주는 명산의 고액이 뭉친 차 한줌 보내주시는 일이라 하오,

목마르게 바라는 이 염원 , 부디 물리치지 마시고 베풀어 주소서" 로 끝나는 걸명소(乞茗蔬)

편지는 임금에게 소를 바치는 심정으로 혜장에게 편지를 보내는

 다산의 유머와 애틋함이 물씬 풍겨난다.

 

 

 

 

 

 

해월루

2007년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이어주는

오솔길 중간부근에 세워진 해월루는

차(茶)에 심취했던 다산이

백련사의 아암 혜장선사와 불교의 주역사상 등을

유하며 걸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강진군에서 세운 누각이다.

보름날 해월루에 오르면 바다에 비친 달무리가

아름다운 누각으로

매년 1월1일 일출을 보면서 도암의 군민들과

함께 만덕산 시산제를 지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