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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싶다

강화도 초지진

2015년 여름휴가

8월 02일부터 05일까지..

첫날인 일요일에는 인천 차이나타운과 월미도

둘째날에는 영종도로 가는 인천대교를 지나 강화도 , 그리고 저녁에는 과천 애버랜드 야간 놀이구경

그리고 셋째날에는 강진으로 내려가는 길에 군산 철길마을과 근대박물관을 들렀었다.

마지막 4일째인 수요일에는 일찍 집으로 돌아와서 오후부터 장사 시작...ㅎㅎ

 

이런 저런 부연 설명 없이 지나온 사진들만 기록용으로 남겨본다.

초지진(草芝鎭)

초지진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하여 조선 효종(1656년)에 구축한 요새이다.

고종 3년(1866년) 10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군(로즈) 극동함대 및 고종 8년(1871년) 4월에 통상을

강요하며 내침한 미국(로저스) 아세아 함대와 고종 12년(1875년) 8월 침공한 일본군함 운양호와 치열한 격전을 벌인

격전지이다. 당시 프랑스와 미국, 일본의 함대는 우수한 근대식 무기를 가진데  비해 우리 군은 사거리도 짧고 정조준도

안되는 열세한 무기로 외세에 대항해 싸웠던 것이다.

특히 일본군함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년)에 강압에 의한 강화도수호조약(병자수호조약)을 맺어 인천, 원산

부산항을 개항하게 되고, 또한 우리 나라의 주권을 상실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초지진에는 병마첨절제사 1인,

군관 11인, 군사 320인,  전선 3척이 주둔하였었다.

이곳은 미족시련의 역사적 현장으로 애국애족 및 호국정신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1973년 성곽을 보수하고 당시의

대포를 전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포탄흔적

이 곳은 병인양요(1866년), 신미양요(1871년) 및 운양호사건(1875년)의 격전장으로 노송과 성벽에 각종 포탄의 흔적이 남아 있어

그 때의 치열했던 전황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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