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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마음은 태양/살며 사랑하며

콩코드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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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코드의 오류는 손실이 커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제까지의 투자가 아까워 그만두지 못하는 현상으로, 매몰비용

효과(sunk cost effect)’와 비슷한 뜻이다.

이는 1969년 프랑스와 영국이 합작해 만든 콩코드

비행기에서 유래한다.

콩코드 비행기는 평균 속도가 마하 1.7로 일반 여객기의 두 배가량

빨랐지만 높은 생산비와 기체 결함, 소음, 낮은 수익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었다. 투자자들은 사업 타당성이 없다고 예상했지만

오랜 기간 투자해왔던 비용이 아까워 투자를 이어갔고 결국 막대한

손실을 내다가 2003년 운항이 종료됐다.

새만금 방조제 사업, 모토로라의 위성 휴대전화사업 등의 실패에서

볼 수 있듯 전망이 어두운데도 투자를 이어간 사례는 흔하다.

 행동경제학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사람들은 매몰비용의 오류 때문에 열악한 일자리와 불행한 결혼,

전망 없는 연구 프로젝트에 집착하고 매달린다고 말했다.

 한편, 콩코드 여객기의 퇴장으로부터 15년이 지난 최근 각국에서 차세대 초음속 여객기에 대한 연구와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채산성과 소음 문제를 극복할 여건이 마련됐다고

 인식이 확산된 까닭이다.

콩코드의 후예들이 콩코드의 오류를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 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초음속 여객기로 세계인의 격찬 받았지만 비운의 사고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콩코드(Concorde)'

 여객기는 훗날 항공업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합작해 콩코드 여객기를 개발한 콩코드 개발팀은 개발 중에 초음속 여객기가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 투자한 비용이 많았고, 영국과 프랑스의 자존심은 실패를 인정하지 못합니다.

결국 콩코드는 비운의 사고를 당하게 되고 회사는 초음속으로 문을 닫게 됩니다.

경제학 용어 중에 이미 투자한 비용에 집착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를 '콩코드의 오류(Concorde Fallacy)'라고 합니다.

달리 '매몰비용의 오류'라고도 하는데 잘못된 투자를 정당화하기 위해 더욱 깊이 개입해 가는 의사결정 과정을 일컫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의 항공기 산업은 급속도로 팽창합니다.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 제작은 물론 세계 여객기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에 자극받은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의 독주를 막고 유럽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손을 잡습니다.

영국항공기법인(BAC)과 프랑스 쉬드아비아시옹(Sud-Aviation)사는 1962년 11월29일 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초음속 여객기를 개발하기로 결정합니다.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비행기의 이름으로 '조화, 협력, 화합'이라는 의미의 '콩코르드(Concorde)'를 제안했고,

 영국과 협의 끝에 e를 뺀 영어 단어 '콩코드(Concord)'로 확정됐다가 나중에 다시 e를 붙여 최종 '콩코드(Concorde)'가 됩니다.

콩코드 개발은 그야말로 도전이었습니다.

음속의 두터운 벽을 뚫기 위해서는 엔진의 힘도 필요했지만 불안정한 공기의 흐름과 초음속 비행으로 인한

충격과 마찰열을 견딜 수 있어야 했습니다. 사람을 태우는 여객기인 만큼 안전성이 보장돼야 했습니다.

1966년 최초의 시험용 모델 '콩코드 001'이 탄생했고 1969년 3월에는 29분 동안의 비행 테스트를 통과하고,

한 달 뒤 두 번째 모델 '콩코드 002'도 비행에 성공합니다.

그보다 몇 달 앞선 1968년 12월에 러시아의 초음속 여객기 '투폴레프(Tupolev) TU-144'가 140명의 승객을 태우고

음속보다 2배 빠른 마하 2의 속도를 기록하면서 콩코드 개발팀은 개발을 더욱 서두르게 됩니다.

그 결과 1969년 10월 마하를 돌파하고, 11월에는 마하 2.02로 초음 여객기의 역사에 새장을 열게 됩니다. 

한 때 상류층을 위한 여객기로 주가를 올리기도 했던 콩코드는 사고 이후 결국 파산합니다.           

그러나 콩코드 개발팀은 이 때쯤 콩코드 여객기가 경제성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마침 세계적 불황과 오일 파동이 닥치면서 콩코드기가 실용성과 경제성이 낮은 비효율적인 여객기가 될 것이란 점을 예상하게 됩니다.

개발 예정 여객기는 몸체가 좁고 수용인원이 기존 여객기에 비해 적은데다 연모 소모량이 많아

 운항 비용이 커질 것이란 단점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콩코드 개발을 시작하던 1962년 당시 "미국과 소련이 우주 기술을 주도한다면

우리는 지구 상에서 가장 빠른 여객기 기술을 갖고 있다"고 큰소리 쳤습니다. 투자금액도 1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이미 투자된 금액에 대한 미련과 영국과 프랑스 정부의 자존심은 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개발을 강행하면서 드디어 여객기가 세상에 첫 선을 보입니다.

1971년 9월에 영국에서는 '콩코드 101'이 제작되고,

 프랑스에서는 '콩코드 102'이 제작돼 1973년에는 두 대가 모그 시험비행에 나서 무사히 통과합니다.

마침내 운항을 개시하면서 콩코드의 전성시대가 열리는 듯 했습니다.

 1973년에는 '콩코드 001'이 기존 여객기가 가지 못하는 고도 2만m까지 올라가는데 성공했고,

1974년에는 '콩코드 101'이 마하 2.23에 도달했습니다.

또, 1976년 1월21일 세계 최초로 초음속 여객기의 상업 운항을 시작하는 등

기존의 기록을 속속 갈아치우며 세계 항공사에 파란을 일으킵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안전에서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1979년 착륙 중에 조종사의 실수로 타이어에 펑크가 난 것 외 기체 결함이나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운항을 거듭할수록 콩코드 여객기의 단점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개발팀이 걱정했던 문제가 표면화되기 시작했던 겁니다. '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

'콩코드(Concorde)'의 모습은 독특합니다.

 길쭉한 기체에 삼각형 모양의 날개, 독수리처럼 날카롭게 구부러진 앞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공중으로 떠오르는 양력을 유지하기 위해 앞 부분을 길게 설계했습니다.

그런데 앞 부분이 활주로를 달리거나 이착륙할 때는 단점으로 작용해 시야를 가리자

이착륙 때는 앞코가 아래로 구부러지도록 해 콩코드의 또 하나 볼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콩코드는 낮은 경제성이 단점이었습니다.

글자 그대로 '보기 좋은 떡'에 불과했던 것이죠.

일반 비행기보다 2배 가량 빠른 속도인 마하 2로 곱절 빠른 속도,

고도 2m까지 올라가 2배 정도 높은 곳에서 비행한 만큼 평균 8시간 넘게 걸리는 파리-뉴욕 구간을 3시간 반에 주파했지만

요금은 엄청나게 비쌌습니다.

기체가 좁고 길어서 이코노미 좌석 4개를 옆으로 간신히 배치시킨 좁은 좌석인데도

 일반 항공편의 퍼스트클래스보다 3배 이상, 이코노미석 요금은 15배나 비쌌습니다.

지금 환율로 환산해보면 100만원 정도면 갈 수 있던 거리를 800만원 이상을 주고 타야 했다고 합니다.

대형 여객선이 300명을 넘게 태우고 비행하는데도 콩코드는 100명이 고작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돈이 아깝지 않은 부자들이나 시간에 쫓기는 글로벌 기업의 CEO만 타는 비행기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습니다.

한 때는 그들 만을 위한 비행기로 자리매김 하는 듯 했습니다.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콩코드 개발팀은 사전에 이런 단점들을 예상했으면서 왜 개발을 강행했을까요?

이미 많은 비용이 투자됐고, 실패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영국과 프랑스 정부의 자존심이 결정적이긴 했지만

 당시 항공 산업의 구조가 영국과 프랑스를 조급하게 만들었던 점도 일부 작용했다고 봐야 합니다.

 

1903년 미국의 라이트 형제는 동력에 의해 하늘을 나는 '비행기'라는 기계를 최초로 발명한 이후

 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러시아와 독일, 미국의 항공 산업 발전이 약진합니다

. 특히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 제작은 물론 세계 여객기 시장을 장악한 미국의 항공기 산업이

급속도로 팽창하면서 영국과 프랑스가 긴장하게 됩니다.

미국의 독주를 막겠다는 이유로 영국과 프랑스가 힘을 합쳐 콩코드 개발에 나서지만 결국 무리수를 둔 셈이지요.

 

2000725일 파리 샤를드골 공항을 이륙한 뉴욕행 콩코드기가 갑자기 불길에 휩싸여 공항 인근의 호텔과 충돌해 폭발합니다.

이 폭발로 100명의 승객과 9명의 승무원 전원이 사망하면서 콩코드는 큰 위기를 맞게 됩니다.

사고조사 결과 콩코드 몇 분 전에 출발한 비행기가 떨어뜨린 금속 조각이 활주로를 달리던 콩코드의 타이어를 파열시켰고,

 이 때 튀어나간 타이어 조각이 연료통에 구멍을 내면서 폭발로 이어진 것입니다.

 

연료탱크에 불이 붙어 불꽃을 내뿜으면서 이륙 중인 콩코드기.

 이륙하자마자 인근의 호텔로 추락해 폭발했습니다

 

기체 결함이나 조종사의 실수가 아니었지만 100명에 달하는 고위층과 부자들이 탄 비행기가 순식간에 포발한 사건은

콩코드의 미래에 부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사고 후 12개월이 지난 2001911일 콩코드는 운항을 재개했지만 승객수가 늘지 않으면서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 세계 각국의 항공사를 대상으로 매각 협상을 벌이지만 마땅한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2년 뒤인 20031126일 영국 브리스톨 공항 착륙을 마지막으로 상업 운행을 접게 됩니다.

 

콩코드는 지금도 기록상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여객기입니다.

한창 때는 여객기 한 대값이 2300만 파운드로 당시 환율로 우리 돈 2000억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하늘을 날기 시작한지 27년 만에 세상에서 가장 빠른 여객기는 박물관으로 가는 운명을 맞이하고 만 것입니다.

 

경제학 용어로 이미 투자한 비용에 집착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를

 '콩코드의 오류(Concorde Fallacy)'라고 합니다.

달리 '매몰비용의 오류' 라고도 하는데 잘못된 투자를 정당화하기 위해 더욱 깊이 개입해 가는 의사결정 과정을 일컫습니다.

'본전 생각에 노름판을 떠나지 못하는 도박꾼과 같은 심리'라고 거칠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인명이 상한 후에 기체의 약점을 고친 콩코드의 행태에 분노한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 만큼 콩코드의 실패는 항공 산업에서 뼈아픈 실책이었습니다.

지금도 콩코드의 속도는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깰 수는 있지만 깨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오히려 예전보다 모든 노선의 비행시간은 더 길어졌습니다.

고객들이 빨리가는 것보다 항공권 가격이 더 싼 것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항공사들은 운항비용을 낮추기 위해 연료를 아끼는 노력을 하다보니 속도는 더 느려졌다고 합니다.

비행기는 더 좋아졌지만 속도는 더 느려지는 것을 '콩코드 효과'라고 할 수 있을까요.

 빠른 것보다 편하고 저렴하고, 안전한 비행을 원하는 고객의 마음을 읽지 못한 것이 콩코드의 실패 원인입니다.

 

최근 들어 미국과 중국 등이 초음속 비행기 개발에 다시 나서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중국은 뉴욕-베이징을 2시간만에 주파하는 마하 5의 극초음속 여객기를 개발 중이라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연료의 효율성, 소닉붐의 소음 극복 등 상용화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습니다.

 

마하 5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의 딱 2배 속도, 콩코드기의 속도였던 마하 2까지만 상용화되어도 좋지 않을까요.

장거리 비행시간이 절반 만 줄어도 이코노미석 승객들의 피곤은 훨씬 덜 할테니까


뭔가 알아가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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