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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0대 명산

봉화 청량산 축융봉, 100대명산 그 쉰일곱번째 산행

 

봉화 청량산 환종주 산행 중 첫번째 만나는 축융봉 

▣ 일시 : 2024년6월4일(화요일)

▣ 산행코스 : 청량지문 -  643봉 - 축융봉 - 청량산성길 - 밀성대 - 입석 - 청량사 - 능선안부 - 연적봉 탁필봉 자소봉 -

                 능선안부 - 뒷실고개 - 하늘다리 - 장인봉  - 전망데크 - 금강굴 - 청량지문

▣ 도상거리 및 소요시간 : 14.0km 정도 예상 , 8시간00분(휴식시간 포함)

▣ 특징적 산행 메모

   - 청량산, 응봉산, 덕항산 산행 여행중 그 첫번째 산행으로 청량산 환종주 산행

   - 청량산 산행을 위해 전날 밤에 청량사 입구에 도착, 주차장에서  비박 후 산행

  -  삼척 응봉산과 덕항산 가는길에 봉화 청량산을 먼저 선답하게 된 산행이다.

 

강원도 삼척의 응봉산과 덕항산 산행을 계획하던 중

삼척으로 올라가는 도중 봉화 청량산을 먼저 답사를 하고

응봉산과 덕항산까지 둘러보고 내려오는 꽤나 야심찬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결과론적으로

응봉산보다는 덕항산을 먼저 산행을 하게 되었는데

연이틀의 무리한 산행으로 응봉산은 포기를 하고 내려왔다.

응봉산 덕풍산장 근처에서 비박을 해 볼까 싶었는데

그 잠자리를 펼만한 곳이 없었을뿐더러, 응봉산에서 먹을 먹거리가 준비 되지 않아서

결국 덕항산을 먼저 산행하는 이유가 되었다.

6월4일 청량산 축융봉과 주봉인 장인봉 산행을 위해 전날 오후에

봉화로 출발을 했다.

봉화까지는 4시간 30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어둠이 내린 시간에 도착을 했다.

차마 청량산도립공원 안내소까지는 들어갈수가 없고

입구 첫번째 주차장에 잠자리를 만들고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했다.

청량산의 대문인 청량지문

전날 축융봉으로 오르는 산행들머리를 찾아서 청량사 계곡을 여러번 오르내렸는데도 

방향을 찾을 수 없었고, 아침이 밝아온 이후에서야  청량지문 바로 옆으로 들머리를 확인하고

06:40분에 축융봉을 향한 산행이 시작되었다.

오늘 계획은

축융봉을 오른다음, 산성길을 따라 내려서 입석에서 아침같은 점심을 먹고

청량사와 장인봉을 오른다음 삼척 응봉산 덕풍산장까지 이른 도착을 할 계획이다.

청량지문 바로 옆 목재다리가 축융봉으로 오르는 들머리가 된다.

축융봉으로 오르는 길에 만나는 첫번째 조망터

이곳 축융봉에서는 굽이 굽이 돌아가는 낙동강 조망을 막힘없이 할 수 있는 곳이다.

애써 청량사와 장인봉만을 고집하지 않고, 축융봉까지 돌아나가는 환종주를 선택했던

주요한 원이이기도 했다.

청량산 육육봉

산은 숲에서 나와야지만 지 멋을 바로 볼 수 있다.

청량산이 지 아무리 멋드러진 암벽과 봉우리로 신비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한들

숲속으로 들어가면 보이는것은 한없이 빈약한 일부분만을 보게 되는 것이다.

 

청량산 육육봉은

최고봉인 장인봉(丈人峰)을 비롯하여 외장인봉(外丈人峰)· 선학봉(仙鶴峰)· 축융봉(祝融峰)·

경일봉(擎日峰)· 금탑봉(金塔峰)· 자란봉(紫鸞峰)· 자소봉(紫宵峰)· 연적봉(硯滴峰)· 연화봉(蓮花峰)·

탁필봉(卓筆峰)· 향로봉(香爐峰) 등12개의 고봉이 치솟아 절경을 이룬다.

금탑봉 오른쪽의 절벽인 어풍대(御風臺)는 최고 절승으로 꼽히고 있고,

신선이 내려와서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대,

선녀가 가무유희를 즐겼다는 선녀봉을 비롯하여 신묘한 절승지가 많다.

 

낙동강이 이 산의 서쪽 기슭을 흐르며, 반곡폭포· 산북폭포 등의 폭포가 이 산의 풍광을 더하여주고 있다.

청량산에는 27개의 절과 암자의 유지(遺址)가 있고, 신라 시대 이후 선현들이 수도한 유적이  다수 남아 있다.

원효가 건립하였다고 하는 내청량사(內淸凉寺)와 외청량사(外淸凉寺),

의상이 창건하였다는 유리보전(琉璃寶典),

신라 시대의 명필 김생이 글씨를 공부하던 김생굴(金生窟),

최치원이 수도한 고운대(孤雲臺)와 독서대(讀書臺),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은신한 유명한 오마대(五馬臺)와 공민왕당(恭愍王堂) 등이 있다.

 

이황(李滉)은 도산서원을 근거로 하여 후학을 가르치며 학문을 연구하다가 

수시로 청량산으로  들어가 수도하였다고 한다.

그는 청량산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 산을 매우 사랑하여 이 산에 관한 51편의 시를 남겼고,

청량산록발(淸凉山錄跋) 이라는 글도 썼으며, 또 청량산을 오가산(吾家山)이라고도 하였다.

이황이 거처하며 학문을 연구하던 자리에 후인들이 기념으로 세운 청량정사(淸凉精舍) 라는 건물이 지금도 남아 있다.

수려한 경관과 유서 깊은 문화유적이 곳곳에 있어

봉화군 및 안동시 일대의 48.76㎢가 1982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축융봉에서 보이는 청량지문쪽 낙동강 모습

 

08:25 축융봉(80 정상

06:40분에 청량지문에서 출발 했으니 1시간45분만에 도착을 했다.

혼자하는 산행이 늘 그렇듯이 주저앉아 노닥거릴 일없이 사진찍는일 말고는 할일이 없다.

그저 천천한 걸음으로 묵묵히 걷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축융봉은 청량산에 비하면 인지도가 한없이 떨어지는 곳이지만

청량산을 조망하는 조망터로서는 단연 최고일 것이다.

청량산을 보기 위해서는 청량산 장인봉이 아닌 축융봉을 무조건적으로 올라야 하는 것이다.

 

 

 

 

바로 능선은 청량지문에서 축융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으로 크게 어렵거나 경사가 급하지는 않다.

조망 또한 특별할게 없어서 걸음이 늘여질 이유도없다.

그저 지 혼자서 서두를 필요없이 자박자박 걷기만 하면 되는 날이다.

축융봉은 정상 반대편 봉우리에서 보이는 모습

 

청량산 축융봉에서 보이는  육육봉(六六峯)으로 불리는 12개 봉우리

웅장하고도 극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청량산이 산세가 우람하여 산꾼들에게 알려져 있는 곳은 아니지만

생각외로 멋드러진 이쁜 산 그림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강원도 삼척 응봉산과 덕항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연찮게 알게 되었던 척량산

왜 인제서야 알게 되었는지... ㅎㅎ

하긴 

봉화까지 4시간30분 이상을 투자하여 이곳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닐 것이다.

이 시간이면 이보다 더하고 화려한 미답의 산행지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 않겠는지..?

 

청량산 육육봉이라 함은

깎아지른 절벽 6개에 또 다른 6개를 더했다는 뜻으로 육육봉(六六峯)으로도 불리고 있으며

 예로부터 당대의 묵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청량산이라는 이름은 소수서원을 세운 풍기군수 주세붕이 이 산을 유람하고

'유청량산록'(遊淸凉山錄)을 쓴 것이 유래가 됐다고 한다.

주세붕뿐만 아니라 선비들이 청량산을 소재로 쓴 시만 해도 1천여 수에 달한다.

청량산을 무척 사랑한 사람 가운데 퇴계 이황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청량산을 너무나 사랑해서 도산서원 세울 자리를 두고 지금의 자리와 청량산을 놓고 무척

고심 했었다고 한다.

1982년 도립공원이 된 청량산은 2007년 명승 제23호로 지정되었다.

공민왕당과 산성입구 갈림길

공민왕당과 청량산성길은  축융봉에서 5분정도 내려오면  삼거리에서  갈라진다.

왼쪽길은 산성길, 오른쪽은 공민왕당으로 가는 길이다.

(밀성대1.2km, 산성입구1.8km, 축융봉0.2km, 공민왕당1.1km)

 

청량산성과 밀성대를 볼수 있는 산성길을 가던가  공민왕당을 보기위한 숲속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청량산성길은 조망이 좋고 공민왕당은  숲길이 고즈넉하다.

이번 산행은 당연  경치가 좋을 산성길로 방향을 잡는다.

 고려 공민왕..?

청량사에는 공민왕의 친필로 전하는 현판'유리보전'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청량산과 더불어 공민왕의 흔적이 뚜렷한 곳이 맞은편 축융봉 산성길이다.

이곳엔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피란 와서 쌓은 청량산성이 있고

공민왕을 모신 사당인  공민왕당이 있다.

공민왕은

홍건적의 난을 피해  노국공주와 함께 만난 지 11년이 되던 해 험준한 산악지형인

이곳 청량사로 피신한 것이다.

노국공주는 원래 원나라 왕족이었지만, 결혼한 뒤 고려를 사랑하게 됐다.

그래서 원나라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공민왕의 노력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했다고 한다.

홍건적 난이 진압된 뒤 이곳을 떠나 환도한 그는,

이곳에서 간절히 드린 치성 덕분인지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공주는 출산 중 목숨을 잃고야 만다.

크게 상심한 공민왕은 그때부터 국정 돌보기를 게을리했다고 한다.

산성길 전망대에서 보이는 장인봉과 하늘다리

 

 

공민왕당 갈림길에서 산성길을 따라 밀성대로 내려가는 운치 있는 산성길

이 길은 예전 산성이 그대로 유지보수가 되어 있는 곳으로

살방하게 걷는 제미가 솔솔한 곳이다.

 

 

청량산은 공민왕이 안동으로 몽진을 온 후 청량산에 산성을 쌓았고.

 산성에는 소금과 식량을 비축하고 군사훈련을 했다고 한다.

군졸이나 백성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바위에서 밀어서 처형을 했다고 하는데 

이곳을 밀성대라고 한다. 

조망좋은 한량같은 팔각정 쉼터와는 어울리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참고로 몽진이라 함은

머리에 먼지를 쓴다는 뜻으로, 임금이 난리를 피하여 안전한 곳으로 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밀성대

 

공민왕당 갈림길에서 밀성대까지는 산성을 그대로 복원시킨 산성길을 걷는다면

밀성대 이후부터는 줄기차게 이어지는 데크계단길을 걷게 된다.

이곳 산성길은 가을날의 단풍도 참 이쁠것 같은곳이면서

오늘처럼  초록초록한 초여름의 녹음도 이쁘다.

10:00 입석 쉼터에 일차적인 산행 마무리를 한다.

축융봉 산행보다는 청량산의 주봉인 장인봉과 아름다운 사찰인 청량사를 목표했던 산행이

낙동강조망과 청량산을 가장 멋지게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축융봉일것 같아서

다시한번 계획에 없는 욕심을 부렸던 산행

그래도 이곳 축융봉을 다녀오지 않았으면 화장실 가서 뒷처리를 하지 않고 나온 것처럼

뒤가 구리고 미련이 남았을 것이었는데 고민없이 축융봉을

다녀올 수 있었음에 나란녀석이 산행욕심을 불린것 중,

절대적으로 잘 한 일이었음을 자화자찬 응원을 보내면서 청량산 전반전 산행기를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