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원재에서 수정봉과 덕운봉 그리고 구룡계곡길, 세상에서 이보다 더한 찜통더위길은 없었다.
산행일시 : 2024년 8월3일(토요일)
산행지기 : 여순광 백두산악회 정기산행
산행코스 : 여원재 - 주지봉 - 수정봉 - 덕운봉 - 구룡봉 - 지리산둘레길- 구룡계곡 - 육모정
실산행 : 여원재 - 주지봉- 수정봉 - 덕운봉 - 회덕 - 구룡사 - 구룡계곡 - 육모정-대형주차장
기억해 둘 산행 메모
- 여순광 백두산악회 정기산행
-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로 무지막지한 땀과의 전쟁을 했던 날
- 여원재에서 수정봉과 덕운봉까지의 대간길이 궁금했었는데, 고온다습한 폭염으로 인해
산행 집중력은 떨어졌고, 중요 이정표나 길목들을 놓치는 실수를 범함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8월의 첫 번째 주말
지리산의 무수한 계곡과 능선을 찾아 헤맨답시고 지 앞마당처럼 자주 드나들던 여원재,
운성대장군 돌장승 옆 계단길에서 08:50분에 산행을 시작한다.
여원치 (女院峙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과 이백면 사이에 있는 고개로, 국도 24번, 해발고도 477m이다. 이곳 여원재는 백두대간 33구간의 시작점으로 여원재-수정봉-덕운봉-노치마을-고기삼거리-큰고리봉- 만복대-작은고리봉-성삼재로 이어진다. 옛날에는 남원과 함양 지역을 이어주는 교통로로 이용 되었고 ,여원치 고갯마루는 지리산의 시루봉을 비롯한 봉우리들을 감상하기 좋은 곳이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여원낙조'라 하여 운봉팔경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
여원치라는 이름은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였을 때 이성계의 꿈에 어느 노파가 나타나 적과 싸울 날짜와
전략을 알려주었는데 그로 인해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한다.
이성계는 꿈속의 노파가 고갯마루에서 주막을 운영하다가 왜구의 괴롭힘으로 자결한 주모였다고믿고
노파를 위로하기 위하여 사당을 짓고 '여원(女院)'이라 불렀는데
그때부터 이 고개 이름이 여원치(여원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주민들은 '연재'라고도 부른다.
또한
이곳에는 여원치 마애불상과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비, 그리고 운성대장군 돌장승이 있다.
대간꾼들이 참새방앗간처럼 드나들면서 목을 축여간다는 빨간 지붕 주점이
소나무 숲속아래로 알듯 모를 듯 보인다.
원 산행길은 아래 보이는 주막집 바로 뒤쪽으로 이어지는 게 정석일진대,
오늘 산행은 왠지 첫출발부터 차분한 정리가 안된 것처럼 방향성을 잃고
뭔가에 쫓기듯 발길은 빨라지고 어수선한 느낌이다.
주지사 삼거리(수정봉 3.7km, 여원재 0.6km, 주지암 0.3km)
천하제일의 조망 터라고 하는 주지봉..!
주지봉 정상에는 조그마한 미륵불이 있고
동서남북 각 방향으로 시원한 조망을 겸한 휴식을 취하고 가면 좋은 곳이다.
조망 좋다는 이곳 주지봉이라는 곳은 등로상에서 약간 비껴 있어서
게으른 산꾼들한테는 이마저도 신중한 고민을 해야 하는 계륵과도 같은 곳인지도 모르겠다.
지리산 종주 시 반야봉을 다녀와야 하는 고민처럼...
오늘 산행 코스인 여원재에서 수정봉을 넘고 둘레길을 이은 다음 구룡계곡을 관통할 것이면
분명, 시간적 여유는 충분할 것이고
또한 오늘 산행 중 조망이라고 하는 것을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기에
천하제일의 조망 터라는 곳은, 당연 둘러보고 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내 생각과는 다르게 주지봉 임도 삼거리에서 촉박한 시간에 쫓기듯 허방 하게 지나친다.
그리고는
다시 만나는 주지사에서 돌아 나오는 삼거리...!
나란 녀석은 이곳 주지봉 조망을 절대 포기하지 못하고 갔던 길을 되돌아 나오는 알바 같은 발품을 팔아서
기어이 주지봉을 다녀오기로하고 지 혼자만의 불법 샛길 산행 같은 일탈을 감행한다.
주지사 주차장 공터에서 주지봉으로 이어지는 멋진 소나무 숲길
주지봉에서 보이는 대간길
뒤쪽 구름 속에 잠기는 봉우리는 대간길 중 고남산과 운봉평야
그리고
산 중턱을 가르는 도로는 남원에서 운봉으로 이어지는 꼬부랑 국도
그 고갯마루의 정점에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여원재가 자리 잡고 있다.
주지봉 정상의 미륵불
그리고 정면으로 오늘 가야 할 수정봉
주지봉을 올라오는 길은 아주 난감하고 위험천만한 암릉을 올라야 한다.
그나마 허술한 사다리와 로프가 있어서 간신 하게 올라올 수는 있지만
예전에는 이곳을 어떻게 오르내렸을지....!
그 와중에 이곳 너른 암반에 비륵불상까지 올려놓았으니..
가히.. 주지봉 정상의 조망을 천하제일의 조망 터라 할만하겠다.
주지봉에서 남원 쪽 방향
이쪽 남원쪽 이백면에서 올려보는 수정봉과 갓바래봉은 650m의 높은 산이 되겠지만
반대편 운봉읍 주촌리에서는 250m의 아주 낮은 산으로 변신한다고 한다.
그만큼 운봉이라는 지역이 고원 평야가 된다는 말일 것이다.
참고로 여원재의 해발고도는 477m이다.
주지봉 내려가는 길에 보이는 남원 이백면 쪽 모습과 아슬하고 위험천만하게 오르내리는
주지봉 정상인 위험한 암릉을 올라가는 허술한 사다리..!
예전에는 이 철 사다리마저 없이 로프줄만을 의지해서 오르내렸을 것이면
얼마나 아슬한 위험과 직면했을까,,!
09:35 주지봉을 가기 위해 알바 같은 역주행을 했던 삼거리에 다시 되돌아왔다.
여원재 2.1km, 여원재 1.0km,
주지봉 오르는 묵은 임도길에도 , 이곳 주지봉에서 되돌아 나오는 삼거리에도 주지사와 주지봉에 대한
이정표지석은 절대 없다.
하나쯤 안내를 해 주어도 좋을 것을...
산행 출발지 었던 여원재에는 거대한 주지사 표지석을 세워 놓고서도 애써 찾아가는 길목에서는
길 안내 표지가 완벽하게 사라지고 없다.
그만큼
주지사라는 절이 폐찰이 되었거나,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지 않을까..?
한때는 노래하는 스님이 주지스님으로 있다고 하던데 , 지금은 이 스님마저도 주지사를 포기를 했을까나.. ㅎㅎ
여원재(470m)에서 시작되어 갓바래, 입망치, 수정봉, 덕운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길은
높낮이 고도 편차가 크지 않은 순탄한 소나무그늘숲으로 이어진다.
푹신한 양탄자 길
이 순탄한 길이
오늘은 폭염과 높은 습도로 인해서 아주 죽을 맛이다.
땀은 한걸음 옮길 때마다 한주먹씩 흘러내리니 감히 주체를 할 수 없고
동네 뒷산 둘레길만도 못한 평길에서도 숨은 턱까지 차 올라서 헐떡거린다.
지랄 같은 주지봉을 괜히 오지랖 떨고 다녀온 것이었을까..?
지깐에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다시금 이 길을 걸어볼 것이며
주지봉이라는 조망터는 또 언제 가 볼 수 있겠느냐는..
그럴싸한 핑계를 빌미로 다녀온 것인데
그 잠깐의 일탈이 주는 댓가는 생각 외로 벅차고 난감했다.
갓바래봉과 입망치(笠望峙 , 545m) 10:22
수정봉 1.3km, 여원재 3.1km, 운봉읍 엄계리, 2.5k, 이백면 과립리 2.3km
남원시 이백면 과립리 입촌마을과 운봉읍 엄계리,행정리 갓바래 마을을 이어주던 옛 고갯길로
입망치는 갓바래재의 한자 표기라고 한다.
맘껏 순탄하고 푹신한 소나무 숲길을
주지봉까지 알바 같은 역주행을 했기에 본진의 산행팀을 따라잡겠노라
밀렸던 걸음을 재촉하는 두 다리는 원 없이 힘들기만 할 뿐 좀처럼 그 간극이 좁혀지질 않았고
머리에서는 아른한 현기증만 가물하게 올라올 뿐이다.
그래
어차피 늦어진 것
예서... 시원한 얼음맥주로 갈증과 칼로리 보충이나 하고 가자며 갓바래봉 돌바닥에 철퍼덕하게 눌러앉았다.
참고로
령, 재, 치 의 구별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펌글로 올려본다.
령은 큰 산맥을 가로지르는 고개를 뜻한다. 예) 대관령, 한계령, 미시령, 죽령, 조령 등.
령 은 큰 산맥을 넘는 큰 고개가 아니면 쓰지 않기에 대체로 험하고 높은 곳이다.
치 는 본디 높은 인덕을 뜻하는 말이다. 또 다른 말로 티 라고도 하는데,
그리 높지 않지만 완만하다기보다는 가파른 고갯길을 말한다. 예) 팔량치. 방아치, 정령치
재 는 일반적인 접미사. 특별히 규모나 성격상의 기준은 없는 말이다.
조령 같은 큰 고개도 한 편으로는 문경새재라고 부르고, 박달재 같은 평범한 고개도 있다.
입망치(갓바래재)
여원재 3.1km, 노치 3.0km, 수정봉 1.3km
아... 수정봉
폭염주의보와 고온다습한 날에 여원재에서 수정봉까지 2시간 만에 간신한 도착을 했다.
주지봉을 생략했던 다른 산님들은 시간 반도 걸리지 않았을 듯싶은 이 길을
나란 녀석은 원 없이 힘들게, 원 없는 육수를 흘리고 나서야 찌질한 도착을 한 것이다.
참..!
이런 동네 뒷산 둘레길만도 못한 이 길을 이렇게 죽을 고생을 하면서 걸었다니....!
폭염과 고온다습한 이런 날의 산행은 말 그대로 미친 짓의 전형이 아닐까...ㅎㅎ
여원재에서 시작되어 주지봉, 갓바래봉, 입망치,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산행길은
양탄자와 같은 낙엽길과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우거져 있어서 산행이라기보다는
힐링 같은 트레킹 코스이겠지만,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오늘만큼은
한걸음 한걸음이 숨 막히는 갈증과 진득한 육수를 만들어내는
대략 난감의 고행의 길이 되고 있었다.
게다가
혼자서 몰래 다녀왔던 주지봉 산행의 뒤쳐짐으로 인해 더더욱 필사의 걸음을 하고 있는 중이라
폭염 속의 난감한 산행의 고충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버거움으로 가중되었던 것은 당연했으리라...!
수정봉(水晶峰 804.7m, 노치마을 1.7km, 여원재 4.4km)은
운봉읍 행정리와 이백면 양가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 중턱에 수정이 생산되던 암벽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이백에서는 650m의 높은 산이 운봉읍 주촌리에서는 250m의 낮은 산이 된다고 한다.
움막 삼거리 도착 직전의 고인돌..?
정말 고인돌인지...?
어쩌다가 우연한 기회에 올라앉은 것인지 여타 한 설명이나 자료를 찾을 수 없다.
이 고인돌을 지나면 바로 덕운봉 정상아래 움막 삼거리에 닿는다.
오늘
뒤쳐졌던 일탈의 걸음은 수정봉을 오르면서 후미 산님을 만났고
수정봉을 지나는 고인돌 구간에서는 본진에 힘겨운 합류를 해서
움막삼거리 쉼터에서 차분한 점심을 같이 할 수 있었다.
오늘 점심은 조촐하게 준비한 족발 몇 점과 시원한 얼음맥주가 전부
탈진 직전의 갈증으로 인해 물 배가 채워진 상태에서는 여타 한 음식이 목구멍에서 넘어가질 않는다.
그나마 폭염 속의 여원재 수정봉 산행의 최대 효자노릇을 한 것은
얼음 맥주 한두 잔과 분말 포카리스웨트가 간신 하게 지친 체력을 유지시켜 주었다.
덕운봉(움막 갈림길 삼거리 748m) 11:15분
노치마을 0.8km, 구룡폭포 3.9km , 수정봉 1km, 여원재 5.3km
정체를 알 수 없는 움막삼거리에서 점심 겸 차분한 휴식
그리고 11:40분쯤에 구룡봉이 아닌 덕운봉을 넘어 노치마을길로 생각 없이 앞서는 발길을 따라간다.
덕운봉(움막삼거리)에서 방향성을 잃고 덕운봉 정상을 넘었다.
지리산 둘레길로 이어지는 구룡봉과 구룡치를 가기 위해서는 움막삼거리에서 덕운봉 정상을 넘으면 안 되는 것을
잠깐만의 방심으로 묵은길 보다는 선명한 백두대간길, 그러니까 노치마을로 내려서는 길을 따랐던 모양이다.
노치로 내려서는 길 중간에서는 구룡폭포로 가는 길을 그나마도 더 빨리 가겠노라
회덕으로 이어지는 단축 산행코스로 발을 들여놓는다.
이곳 삼거리에서 회덕마을을 지나 구룡사로 이어지는 등로는, 길 숲이 묵어서 쉽게 발을 들여놓기가
망설여지지만 백두에서는 기어이 이 묵은 숲길을 치고 내려가는 것이다.
노치마을로 내려서면 그나마 노치샘과 200년 이상 나이묵은 소나무와 목돌(목 조임석)이라는 볼거리라도
섭렵하고 지났을 텐데, 하등 시간에 쫓길 필요 없는 까칠한 단축길을 선택한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질 않는다..
결과론적으로
회덕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임도길과 구룡사까지 이어지는 폭염 땡볕길을 야심 차게 걸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더 해야 했었다.
노치마을 0.42km, 구룡폭포 3.3km, 수정봉 1.34km, 여원재 5.7km,
노치마을과 회덕 갈림길 삼거리에서 까칠한 회덕으로 이어지는 길을 선택하면
초반의 정리되지 않은 풀 섶을 지나고, 곧 이어서 급경사 소나무 숲길을 만난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서 시멘트 임도를 만나면 우틀해서 진행을 하게 되면 회덕마을로 가는 길이고
좌틀을 하면 노치마을 가는 길이다.
다시
우틀해서 이어진 시멘트 임도길에서 양쪽으로 갈리는 삼거리를 만나면 왼쪽길로
진행해야 회덕마을과 갈대집을 만날 수 있다.
회덕마을은 임진왜란 때 밀양 박(朴)씨가 피난하여 살게 된 것이 마을을 이룬 시초라고 한다.
원래 이 마을의 이름은 ‘모데기‘였다.
남원장을 보기 위해 운봉에서 오는 길과 지리산 산줄기 너머 달궁 쪽에서 오는 길이 모인다는 의미와,
풍수지리설에 의해 덕두산(德頭山), 덕산(德山), 덕음산(德陰山)의 덕을 한 곳에 모아 이 마을을 이루었다고 해서
회덕, 모덕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전한다
회덕마을에는
억새로 지붕을 얹은 집, 즉 '샛 집‘이라는 곳이 있다.
회덕마을은 평야보다 임야가 많기 때문에 짚을 이어 만든 지붕보다 억새를 이용하여 지붕을 만들었으며
지금 만들어져 있는 억새집은 남원에서 지원사업 일환으로 민막도 가능하다.
필시 지리산 둘레길이 활성화되면서 만들어졌지 않았나 싶다.
산간 마을로서는 구하기 힘든 볏짚보다 지리산에 널브러진 억새풀을 이용하여 지붕을 잇는 일이
더 수월했기 때문에 억새로 지붕이 이었을 것이다.
팔랑마을의 욕쟁이 할머니 집의 억새집도 마찬가지다.
단지 팔랑마을 억새집은 막걸리와 식사를 겸한 주점이고, 이곳은 가정집 민박을 겸하고 있을 뿐이다.
참고로 너와집이라는 것도 있다.
너와집이란 지붕에 너와라는 특이한 재료로 덮은 집을 말하는데,
너와는 붉은 소나무를 잘라서 도끼로 쪼갠 작은 널빤지를 이른다.
이 집들은 우리나라 강원 산간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옥의 형태이다.
이곳 억새집을 뻘쭘하게 구경하고 있으니 억새집 쥔은 친절하게도
차분하게 들어와서 구경하시고, 시원한 물도 한 사발 하고 가라 하신다.
암반수 물이라서 한없이 시원하다면서...ㅎㅎ
회덕마을 억새집에서 보이는 서북능선으로 오른쪽 끝으로 보이는 봉우리는
고기리에서 대간길을 잇는 고리봉쯤 되지 않을까 싶다.
지리산 둘레길 1코스의 땡볕길인 회덕마을에서 운봉까지 구간을 만났다.
둘레길안내센터에서 개미정지까지는 그늘 없는 시멘트 임도길이고
개미정지에서 구룡치 지나 회덕마을까지는 푹신한 소나무 숲길을 걷는다.
다시
회덕마을에서 운봉까지는 무더운 땡볕길
그 땡볕길의 시작인 회덕으로 하산을 한 것이다.
원 산행 코스는 덕운봉 움막삼거리에서 구룡봉을 넘고 구룡치에서 지리산 둘레길 1코스를 만나고
구룡폭포로 연결하는 것이었는데
덕운봉을 넘어 노치마을 길을 선택했던 덕분에
회덕마을의 폭염 속 아찔한 땡볕길을 얼척없이 용감무쌍하게 걸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더 해야 했던 것이다.
이것도
지나고 나면 젊은 날의 추억으로 남을 일이니 애써 억울해하지 말 지어니...ㅎㅎ
회덕마을에서 지리산둘레길을 지나면서 만나는 능소화
지리산 둘레길 제1코스 회덕마을 정자나무 쉼터
200년이 넘은 정자나무가 있어 정자나무 쉼터라 이름했으며
간단한 편의점식 먹을거리와 정자나무 그늘아래에서의 휴식은 더없이 좋은 참새방앗간 같은
잊지 못할 추억의 쉼터가 되어주는 곳이다.
폭염이 아닌 따스한 봄날이었으면 참새 방앗간에 들러서
파전에 막걸리라도 한잔...!
구룡사 13:00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간다.
구룡계곡길의 시작인 구룡사
오른쪽 시멘트길은 지리산 둘레길에서 내려서 구룡폭포를 만나러 가는 길이고
구룡사에서도 왼쪽 산허리 쪽으로 데크 길을 만들어 놓았다.
산님들 말로는 구룡사는 그늘길, 오른쪽 시멘트 임도는 더운 땡볕길이란다. ㅎㅎ
구룡폭포
폭포 왼쪽 바위에 방장제일동천이라 쓰여 있다.
방장산은 지리산의 다른 이름이고, 동천은 신선이 사는 선경을 의미한다고 한다
"구룡계곡(九龍溪谷)"과 용호구곡(9곡).
구룡계곡은 9개의 아름다운 풍경이 있어, 우리는 이곳을 용호구곡이라 부른다.
지리산 제일의 경치를 자랑하는 구곡 문화의 결정체 용호구곡(龍湖九曲).
만복이 모이는 곳이라고 이름 붙여진 지리산 만복대에서 발원한 쪽빛 옥류수가 흘러내려 절경을 이루는
구룡계곡은 남원 사람들에게 육체적, 정신적 휴식을 주는 힐링 코스로 유명하다.
구룡계곡의 가장 큰 자랑은 기암절벽과 반석을 휘감아 도는 맑은 물과
물길이 잠시 쉬어 갈 수 있도록 자리 잡은 소(沼)다.
이렇다는데 더 무슨 할 말이 있을까마는
이 계곡물의 어원은
고산평야지대인 운봉을 위시한 고기리 논 밭물이 흘러내리는 곳이다.
중간에 노치마을과 회덕마을의 생활오수도 충분히 함께 흘러내릴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물며 논 밭의 비료며 농약 살포한 물이 섞인 계곡물에서
미지근한 탁한 계곡물에 시원 타며 몸을 담근다는 것은 도저히 나로서는 용납할 수가 없다.
이런 논, 밭 물의 또 다른 대표적인 곳은
산동의 수락폭포도 마찬가지로 폭포 위의 수원은 논과 밭이다.
지리산 칠 암자 상내봉 가는 길에 보이는 공개바위를 닮아있는 구룡계곡의 장군바위,
비폭동은 반월봉 봉우리에서 물이 흘러 물보라가 생기는데 그 모양이 마치 용이 하늘을
올라가는 모습이라 하여 비폭등이라 한다.
전북 남원시 지리산 자락 서북쪽 끝, 구룡사에서 시작되는 구룡계곡은
우리나라 삼신산(백두산, 한라산, 지리산)의 하나인
지리산에서 경치가 제일 좋다는 의미로 "방장제일동천(方丈第一洞天)"이란 글씨가
바위에 음각되어 있다.
구룡계곡(九龍溪谷)은 육모정(六茅亭)으로부터 북쪽 2.8km의 계곡으로
옛날 사월초파일이면 아홉 마리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홉 군데 폭포에서 한 마리씩 자리 잡고 놀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길이는 짧지만 굽이굽이 이어지는 수많은 소와 폭포가 만들어 내는 비경은
여느 계곡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한국자연보존회가 선정한 '한국의 100 명수(名水)'에 선정됐을 정도이니
계곡 자체만으로도 격조가 느껴지는 곳이다.
또 판소리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동편제에 속하는 명창들이
득음을 위해 수련을 쌓은 계곡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폭염과 더위 그리고 심한 갈증으로 인한 체력 고갈
그리 좋다는 구룡계곡과 용호구곡이라는 것들이 도저히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단지 이 숨 막히는 더위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고의 바램일 뿐이다.
해서
사진 찍는 것도 귀찮고, 잠깐만의 휴식도 부담스럽다.
그 좋다는 계곡 물속에라도 들어가 볼 만도 하겠지만 이 계곡물의 수원을 익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0 물 같은 이 계곡에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다.
혼탁한 논, 밭물인 구룡계곡물이 좋다며
온 집안 식구들 불러 모아서 발을 담그고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구룡계곡 용호구곡 중 구시소
떨어지는 물살에 패인 바위의 모양이 마치 소나 말의 먹이통인 구유처럼 생겼다
하여 이 지방 사투리인 구시를 써서 구시소라 부른다.
예전에는 큰 나무토막이나 큰 돌을 길쭉하게 파내어 만든 구유 모양을 띠고 있었는데
1960년대 발생한 큰 홍수로 인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폭염과 더위로 인한 체력 고갈로 인해서
어떠한 풍경도 보이질 않고 단지 이곳에서 빠른 탈출만을 애원하며 숨 막히게 걸었던 구룡계곡 길
드디어 관리사무소를 만나고 육모정까지 무사한 안착을 했다.
마음의 여유가 있었을 것이면 육모정과 춘향묘도 들러볼 만도 하겠지만
고온 다습한 폭염과 같이 한 오늘 산행길에서는 이 모든 것이 미친 짓이고 공염불에 불과할 뿐이다.
단지
소원이라면 시원한 에어컨바람과 숨 넘어가는 시원한 생맥주만이 그리울 뿐이다.
폭염주위보가 내려졌던 8월의 첫 번째 토요일
백두산악회와 찜통더위가 함께 했던 철인들의 산행은 이렇게 무탈한 마무리를 했다.
육모정과 춘향묘
육모정지리산 국립공원 구룡탐방지원센터 근처의 구룡계곡 옆에 있는 정자로,
육각정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육모정(六茅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572년(선조 5년) 남원도호부 관내에서 만들어져 현재까지 유지·계승되고 있는
원동향약 관련 유적으로, 향약 계원들이 모임을 하던 곳이다.
1961년 수재 때문에 유실되었다가 1997년 복원되었다.
옛 육모정은 구룡계곡 옆 큰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곳에서 약간 떨어진
언덕 쪽에 복원되어 있다. 육모정 근처에는 용호정과 춘향묘, 용호서원 등 있다.
아래 사진
때 이른 저녁식사를 위해 황점으로 가는 버스에서 허기진 나의 지리산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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