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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싶다

여수 해양공원(종포)의 하멜등대를 아시나요...?

         여수 해양공원(종포)의 하멜등대를 아시나요...?

 

        봄날같이 따뜻한 삼일절 휴일입니다.

        구름 가득한 흐린날일것이라는 기상청 예보와는 달리

        볕좋은 완연한 봄날의  날씨가 한낮의 해양공원을 드리워져 있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을것이라는 예보에 향일함 노루귀를 찾아가고싶은

        간절한 마음도 접어버린 오늘...!

        아이들과 간만에 여수엑스포가 열리면 더 많이 알려질 종포의 해양공원과

        하멜등대..!

        그리고 자산공원이라는 곳을 둘러봅니다.       

       

 

 하멜과 여수

1653년 1얼에 네델란드 상선 스페르베르호가 텍셀에서 출발하여 7월 바타비아(자카르타)를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가는 도중 8월 16일 제주도 근해에서 태풍을 만나 표착하였다.

 

 살아남은 사람은 64병중 36명이였는데 그중 한사람이 헨드릭 하멜이였다.

1654년 5월 왕(효종)명으로 일행은 서울로 압송되었다가 1656년 강진 전라병영으로 압송되어 7년 세월을 보냈다.

가뭄으로 식량이 부족하자 1663년 2월 살아남은 22명을 여수에 12명 순천에 5명 남원에 5명씩 분산 수용하게 되었다.

여수에 오게 된 12명 중에 하멜이 있었고 여수 전라좌수영성 문지기 생활을 하였다.

1664년 초에 부임한 이도빈 수사는 인자하여 하멜 일행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었으며

양모장사를 하여 탈출할 배도 살수 있는 돈을 벌게 되었다.

1666년 부임한 수사 정영은 인자하지 못하여 힘든 생활을 하다가 탈출을 시도하게 되었다.

 

1666년 9월 4일  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주민들과 함께 지내다가 전라좌수영성 담을 넘어 약속해 두었던 부둣가로 갔다.

식수를 준비하여 썰물이 시작될때 군선 옆을 지나 남쪽 끝을 향하여 달렸다.

저녁 무렵 부산 끝을 마지막으로 보면서 한국 영역을 완전히 벗어났다.

 

이곳이 하멜 일행이 자유를 찾아 항해를 시작한 출발지이다.

 

  종포(해양공원 )착장에서 보이는 돌산대교

 

 

   ▼ 해양공원내 놀이시설물들

 

전형적인 봄날같이 따뜻했던 삼일절 휴일

여수 해양공원에는 아이들과 같이 마실나온 사람들로 가득 합니다.

너무 겨울 추위에 숨죽이며 지냈던 것일까요...?

아직은 봄맞이 여행을 떠나기는 이를것이고...

가볍게 공원바람을 쏘일수 있는것이

오늘 주어진 최선의 봄날을 즐기는 방법이 아니였을까..ㅎㅎ

 

 

 

 

   해양공원에서 보이는 제 2 돌산대교 (지금 한창 마무리 공사중임)

 

 

 

 ▲ 한참 마무리 공사중인 돌산 2대교 모습

 

 

 

 

 

 

 

 

 

 

 

 

아빠...!

빨리와..! 또 사진찍고 있어..?

 

이제는 아이들 눈치가 보여서도 사진한장 맘 편히 담아낼수도 없습니다.

해양공원에서 바로 가까이에 있는 하멜등대를 가보자고 꼬드겨도..

당체 반응들을 보이지 않는 아이들...!

거기 가면은 아빠만 좋잖아...!

왜...?

사진 찍을수 있으니까..ㅎㅎ

 

이런...이런...!

 

 

 

 

 

 일부러 만들어 놓은 낙서판인지..

아님 안내 표시판이 이렇게 변질된것인지는 정확히 알수가 없습니다만..

참...숱한 사람들이 다녀간 세월의 흔적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때 사랑한 사람들의 영원하기만 할것 같은 사랑의  약속도

또 한때는  불 같았을 옛사랑의 흔적들도

고스란히 남아서 그 시절을 추억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옛시절에 그런 사랑이 있었노라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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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로 오게된 하멜 일행은 나뭇가지를 잘라 화살을 만들고 쌀을 찧고 새끼를 꼬는 일 등 고달픈 노역을 했다.

끝이 없는 부역과 노예같은 생활에 지친 하멜일행은 탈출계획을 세워

1666년 9월 순천에 있었던 항해사 얀 피터슨을 비롯한 8명이 배를 구해

여수 종포(현재의 위치)에서 밤늦은 시간을 틈타 출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