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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한 산 이야기/환장하재, 남도산

강진 화방산... 작지만 옹골찬 풍류가 있는 능선들

      강진 화방산..작지만 옹골찬 풍류가 있는 능선들

             1. 산행 일시 : 2012 . 04. 29 (일요일)

             2. 오름한 산 및 산행 코스 : 강진 화방산(402m, 천불산)

                  삼화마을 - 전망바위 - 광대바위-호랑이굴- 화방사 - 삼화마을          

             3. 준비물 :

                 - 긴팔짚티. 바람막이 자켓.  선글라스 .  스틱,  장갑. 

                 - 물500ml  1통  

                 - 카메라 : 니콘24-70,  

             4. 오늘의 날씨

                 -  안개낀것처럼 찌뿌둥한 날씨                 

             5. 특징적 메모 및 산행반성

                 -  고향 뒷산인 화방산을 인제서야 걸어볼수 있었음

                 -   생각보다 옹골차고 조망이 시원하니 좋음

                 -   간단한 봄 산행지로 이보다 더 좋을수 있을까 싶음 

 

 

 

 

 

  산행 지도  및  길 찾기   산 행 일 지

 삼화마을 - 1.9- 조망터 - 1.9 -화방산 정상 - 0.3 - 화방사 삼거리 - 0.5 - 화방사 - 0.5- 회관

  06 : 45  시골 집 출발

 07 : 00 저수지

 07 : 10  산행들머리

 07 : 40  첫번째 조망터

 08 : 05  형제바위

 08 : 20  광대바위

 08 : 45  헬기장(고바위길 시작점)

 08 : 56  고바위길 중 첫번째 조망터(수인산, 남해고속도로조망)

 09 : 02  두번재 저망터

 09 : 10  화방산 정상(천불산 정상석)

 09 : 15  절리대구간

 09 : 25  호랑이굴, 화방사 삼거리

 09 : 35  호랑이굴

 09 : 45  다시 화방사 삼거리

 10 : 00  화방사 (휴식)

 10 : 40  삼화마을 회관

  도상거리 : 5.5km   산행시간 : 4시간(고사리끊기.  휴식시간 포함)

 

 

    ▲ 화방산 들머리인  저수지 가기 전 싸가지 바위쪽에서 바라 보이는 삼화마을과 마을 들녘

 

화방산 들머리는 보통 삼화마을 마을회관에서  시작된다.

실제적인 산행들머리는 제너머 저수지를 지나면 조그만 계곡 끝점의  또랑을 건너면서 시작되지만

보통은 마을 회관을 들머리로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삼화마을 아랫길을  관통하고  시멘트 임도를 따르면 재너머까지는

10 여분 정도의 발품을 팔면 금새  올라설수 있다.

 

그 옛날의 유년시절에는 이 재너머까지 오름 길이 왜 그리 멀고 힘들었던지...!

임도를 잠깐 오르다 보면 만나는  삼화마을 저수지

 

지금은 엄청 작게만 보이는 둠벙에 불과하지만

이 조그마한 둠벙에서도 한때는 삼화마을의 너른 들녘을 가르는 주요한 농수 시설이였으며

동네 아이들의 한여름을 빗겨가는 중요한 물놀이 장소 였었다.

이 조그마한 저수지에서 입술이 파래지도록 물놀이를 하고나면

계곡을 건너는 다리 위에서는 비석놀이(옥과놀이..?, 기와맞히기..?)로 등허물이 벗겨지도록

또 배가 창시에 달라붙을때가지 그 놀이가 이어지곤 했었다.

 

더워지면 물에 들어가고 추워지면 다리위로 올라오고

그것도 심심하면 가재나 개구리 잡아서 구워먹고..ㅎㅎ

남들에게는  다 메워져가는 소심한  둠벙일지라도

나에게 있어서 이곳은 유년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소중한 공간인 것이다.

도랑치고 가재잡던 곳

그때 저 저수지의 조그마한 횡단구간을 건너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투혼을 발휘 했던지..ㅎㅎ

그때는 그 횡단거리가 한 50 여미터는 족히  되는줄 알았는데..

조그마한 시골 동네의   야트막한  뒷산답게

 크게 어려움 없이 20 여분 오름하면 첫번째로  조망  포인트를 만날수 있다.

 이곳에서는 삼화마을이 한눈으로  들어오고 ,  강진 된장마을로 유명한 신기마을도 조망이 된다.

물론 뒷쪽으로는 병영면과 수인산도 한눈으로 들어 올것은 당연하다.

 

이곳에서 가벼운 조망을 마치고는 화방산의매력포인트인  형제바위 , 그리고 광대바위

화방산 정상의 천개의 불상을 닮았다는 주상절리길을 걸음할수 있는 그 시작을 하게된다.

능선길의 시작인 샘이다.

 

 

 

 

 

 

 


         ▲ 형제바위에서 보이는 첫번째 전망좋은 곳

 

      떠도는  형제바위 전설  하나      

     옛날 인근 마을에 인색하기 짝이 없는 한 부자가 살았다.

    하루는 스님이 찾아와 시주를 부탁하였으나 냉대를 하자,

    기분이 상한 스님은 이 부자를 골탕 먹이기 위해 더 부자가 될 수 있는 묘안을 알려 주었다.

    그 묘안인 즉 "건너편 산에 있는 형제바위가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싸우고 있는 형상이므로 둘 중 하나를 없애버리라"는 것이었다.

    이에 부자는 석공들을 데리고 올라가 형제바위 사이에 구멍을 뚫어 서로를 떼어놓았는데, 이후 그 부자는 곧바로 망해버렸다.

    형제의 우애와 협력의 상징을 망쳐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바위의 영향인지 주변 마을에는 쌍둥이 출산이 잦다고 한다.

    광대바위는 형제바위 위에 있다.

    물론 스님이 그렇게까지 인정없이 한일은 아니라고 알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욕심을 경계하고 있어 듣는 이의들의 잔잔한

    미소를 자아낸다.

 

  廣大바위(큰바위 얼굴)

  큰바위얼굴이라는 바위다

  어렸을 적 우리는 이를 강대바우라 불렀다.

  그냥 소리나는데로 불러댔던  모양이다.

  지금에 와서 큰바위얼굴이라 표준화 했는데 정감은 좀 덜한

  듯도 싶지만 여전히 반갑다. 깨복쟁이 고향 친구같이..ㅎㅎ

 

  그때 우린 이 강대바이 밑으로 동네 형들을 따라 소를 띠끼로

  가곤 했었다. 근처에 소를 띠껴놓고서 우린 줄곳 맹감이며

  깨금을 따먹곤 했었는데...그때는 우리들이 먹을수 있는것은

  그 깨금하고 정금, 산딸기들 밖에는 없었다.

오른쪽 사진은 정면에서 아랫쪽 사진은 광대바위 측면에서 모습

     ▲ 큰바위 얼굴의 측면 모습과 뒷쪽으로 보이는 가파른 화방산 정상 오름길

       광대바위가 정면이 아닌 측면에서는 코끼리 형상을 닮아 보이기도 하네..ㅎㅎ

 

 

 

 

 

 

 

 

 

 


4월말의  화방산에서 만나볼수 있는 꽃들이다.

철늦은 할미꽃과 철죽꽃들이 한참 올라오고 맹감나무(청미래덩쿨)에서도 웃기는 꽃들이 피여 나온다.

가는 길 내내 고사리는 지천이고 산삼뿌리처럼 생겼다는 백선잎들이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새각시처럼 선명한 분홍빛을 발하던 각시붓꽃은 그 절정을 약간 넘어가고 있고

가끔 가다가는 못다피고 사그라지는 진달래가 보이기도 하지만  한없이 푸르른 녹음 올라오는 지금에서는

희미한 연분홍빛은 그 빛을 제대로 알릴수가 없는 모양이다.

 

ㅎㅎ

완벽한 막걸리 타임과 잘 어울릴듯한 세번째 조망 포인트

첫번째는 이마에 땀도 흐르지 않았을터 , 시간상 조금은 이른감이 없잖아 있을테고

두번째는 급경사 중간지점이라서 먹고난 후의 후유증이 걱정되는 곳일게다.

여기가 제일좋다. 소나무 그늘아래 너른 들판을 조망하면서..ㅎㅎ

 

내고향 들녁이라서 더 환장할 명당이겠지만..ㅎㅎ

이 조망 포인트 아래로는 순천 목포를 달리는 남해 고속도로이다.

엇그제 영암까지만 일부  개통을 했다는데..

강진에서 순천까지 40분이면 충분히 달려갈수 있다.

여수 집까지 시간안에 들어 갈수 있는것이다.

이제는 이 고향이라는 동네가 마음만큼 시간에서도 가까워 지는 것은 아닌지..ㅎㅎ

 

 

 

 

 

화방산..?,   천불산...?

천개의 불상처럼 보이는 병풍바위(주상절리)때문에 화방산이 아닌 천불산이라 그 정상석을 심어 놓은 모양이다.
절리는

용암이 지표에 흘러나와 공기 중 냉각되는 과정에서 수축이 되면서 생기는 균열를 주상절리(columnar joint)라 한다는데

화방산의 수직 주상절리는 무등산 ‘입석대’ 못지 않게 늘씬하고 아름답다. 

단지 그 규모가 작고 짧은 구간일 뿐이다.

어찌보면 요란하지 않아서 되려 소박하고 서민적인 멋들은 아닐른지..ㅎㅎ

 

작지만 날카롭게 솟아오른 천불산의 절리길

개의 불상처럼 보인다는 주상절리길이 이토록 아름다운 등로를 만들어 주고 있을 줄이야...!

 

바람 시원하고,  보이는 시야 또한 어느곳을 둘러도 일망무재라니..

좀더 맑은 날이였으면 앞으로는 월출산의 천황봉이 뒤로는 병영 수인산이 한눈으로 보였을텐데

이쯤 어디에서 그 옛날 깨복쟁이 친구들과 너른 시간동안 한없는 향수에 젖어봄직도 하련만은....

 

지 철을 만나는 철쭉꽃들의 위험천만한 화려한 개화라니.. 

저 깍아지른 암벽 틈에서도 지 때가 되면은 생명의 흔적들을 어김없이 피워내면서

고향 산천이 변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ㅎㅎ



 

 

박쥐굴

그 옛날 ..유년의 시절에는 박쥐들을 흔하게 볼수 있었던듯 싶은데..

지금은 박쥐들을 어디서 볼수 있을런지..희귀종에 천연기념물들은 아닐런지 모를 일이지 싶다.

오늘

우연찮게  들여다본 동굴

바위 암반에서  얼음처럼 떨어져 고이는 물들도 탐나지만

몇십년만에 다시 보는 박쥐들이 더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다.

갑자기 드리닥친 소리에 놀라서 도망간 녀석들이 열댓마리쯤 될거면

꽤나 많은 박쥐들이 이곳 동굴에 붙어 살았던 모양이다.

 

그 짜슥들 더럽게 못생겼네...ㅎㅎ

입은 돼지입에 두 눈은 왜그리 이상시럽고 크다냐..!

야행성이라서 눈만 발달을 했을까나..?

 

렌턴을 켜고 핀을 맞추고 플레쉬까지 터트리고서야 간신히 담아내는데 성공했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니...

생겨먹은것이 참...그렇습니다.

        ▲▼ 위쪽사진은 호랑이 굴 입구 전경이고 아랫사진은 호랑이 굴 찾아가는 길

호랑이 굴은  박쥐굴에서 200 m 정도의

비탈길을 거슬러 내려가면 어렵지 않게 찾을수 있는 동굴이다.

한때는 이곳 동굴에 북한의 간첩들이 숨어 살지도 모른다며

시멘트로 동굴 입구를 막아버렸다는 소문도 무성했었는데..

오늘 찾아본 동굴은

위험스런 구간에서 아이들을 격리시키기 위한 거짓말을 한것은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들어가는 입구는 조그만 아이들이나 간신히 기어서 들어가갈 수

있을만큼 좁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어른들 열댓명은 거뜬히

 자리 잡을수 있을만큼  양 옆으로 너른 공간이 형성되어 있다.

 

그 유년의 아이들은 이곳을 드나드는 것을

대단한 영웅 놀이쯤으로 알았는지

촛불 한개에 의지해서 동굴 깊숙히 들어가곤 했었다.

참...어린것들이 무섭지도 않았는지..ㅎㅎ

 

오늘 ...

그 유년의 아이들의 기억을 더듬기 위해서 애써

산행용 랜턴을 챙겨왔는데....

동굴입구에서 어른들 덩치로는 도저히 들어갈수가 없을듯 싶다.

완벽하게 낮은 포폭을 하지 않고서는...

이 동굴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안쪽으로 넓은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찌 알 것인지..ㅎㅎ

 

호랑이 굴이라고 애써 힘겹게 찾아온 산객들...!

많이도 허탈해 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일듯 싶다.

조금만 입구를 확보해주면

이곳 조그마한 화방산에서도 절대 잊지못할

기억들을 만들어 갈수도 있을듯 싶은데....!


 

 

 

 

     천년묵은 고목이 더없이 멋드러진 사찰...강진 화방사

    화방사는 고려시대 1211년(희종 7년) 원묘국사가 백련사를 중창하면서 보은산 고성암과 함께 지은 화방암이 그 시초이다.

    화방암은 뒤에 화방사로 고쳤으며, <강진현지>에 기록된 나한사(羅漢寺)가 곧 지금의 화방사로 나한도량 이었다.

    또한 화방암은 1876년(고종 13년) 화주 경신스님이 새로 중창하고 다시 1888년에 화산 스님이 중수했다.

    그리고 1912년에는 태흥 스님이 삼존묘상과 16진용을 모셨는데, 당시 절의 모습이 지금과는 달리 자못 화려했다고 한다.

    최근 새로 지은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구조이며, 특기할만한 것으로 1917년에 세워진 천불산

    화암사 사적비가 있다. 이비는 대흥사 스님으로 초의선사 제자인 원응 계정(圓應戒定)스님이 지었는데 만덕산 백련사의

    연혁과 함께 화방암의 기록이 남아 있어 강진 불교 역사 연구에 귀중한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 조계종 소속으로 대흥사의 말사인 화방사는 이 지역에서는 잘 알려진 사찰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화방산 중턱에는 마치 장군이 우뚝 서 있는 듯한 형상의 선바위(立岩)가 있다.

    옛날 어느 전쟁 중에 적군이 화방산 일대의 마을을 점령하기 위해 쳐들어 오다가 이 바위를 장군으로 잘못보고 군사들이

    매복해 있는 것으로 착각한 나머지 혼비백산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래서 화산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마을의 수호신이나 다름없는 이 바위의 공적을 높이 추앙하고 있다.

 

   - 윗 글은 인터넷상에서 자료조사한 내용으로 강진 화방사의 역사적 고찰을 찾아볼수 있을듯 한데..

      지금도 마을사람들이 마을 수호신이니 공적이니 하면서 추앙한다는 말은 ...ㅎㅎ

      동네 사람들 정서들과는 너무 괴리가 큰 것은 아닌지....!

 


 

 


 

 

 

 

 

강진 화방사는 조그만한 천불산 중턱에 앉은 약 900년 고찰로 대웅전에서 보는 일출, 일몰은 금릉(강진 옛지명)

                8경중 으뜸에 속한다는 말들을 듣곤하는데....

언제 날 잡아서 이곳 금릉 일출을 담으로 와 봐야 되는것은 아닌가 싶다.

비가 쏫아진 뒤에는  대웅전 아래  슬랩지대(벼랑지대)에서 비단폭포가 장관을 연출한다는 말도 있지만

사실 지금은 대나무와 묵은 숲으로 인해서 벼랑은 흔적마저 찾기 힘들게 되어버렸다.

예전...

벼랑위에 멋진 터를 잡았던 화방사는 작지만 천하의 절경이였는데...ㅎㅎ

 

어쨌든 화방사 대웅전에서 보이는 너른 들녘의 시원한 조망은 가슴뚫린 자유였음은 분명하다.

 

 

 

379

" 발 아래 세상 인연도 문턱과 방안 차이처럼 느껴진다고  했던가? "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절아래 컨테이너 박스에서 간신한 기거를 하시는 주지스님(..?)

위의 말처럼 딱 들어맞는 표현이 또 있을까...!

주지스님( 이렇게 부르기는 싫지만 못된 단어는 삼가 해야지..ㅎㅎ)의 젊은날의 방탕과

속세의 인연들이 한 순간의 춘몽처럼 지나버린 지금...!

평생을 같이했던 조그마한 사찰마저 관리할수 없을만큼  초로의 스님으로 변해서 옹색한 컨테이너 박스

한칸에서 방안의 문턱을 넘나들던 지난세월들을 돌아보는 것은 아닌지...?

 

내 유년의 기억에서는   이 스님에 대한  너무 좋지 않은 기억들이 선명해서...

내려오는 길에 뭔가 한소리는 하고 싶어지는  충동이 일어나는 것은...또 뭔 일인지

 

 대부라는 영화의  아버지를 대신한다는 내용이였었지..  代父...!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는 천년의 노거수들..!

그 그늘 밑으로 한없이 이어질듯한 오래된 계단들

오늘은 한참 물올라오는 연초록의 색감과 어울려서 더없이 고풍스런 멋스러움을 자랑한다.

언제 보아도 멋스런 한컷의 풍경을 연출하는 이곳...!

이제는 그 시기를 놓쳐서 아쉽지만 이 계단 옆으로 피여나는 선붉은 동백은 

또  얼마나 이뻤던지...!

 

이제...!

이 오래된 유년의 기억을 따라가는 화방산 산행도 이 계단을 내려서면은 그  끝이 난다.

언제부턴가 절 바로 밑자락까지 시멘트 도로라는 것을 흉물처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에 시작한 고향 뒷산인 화방산 산행

작지만 아주 멋스럽고 옹골찬 산답게 3시간은 꼬빡 소요되는듯 싶다.

중간의 멋스런 조망터에서 막걸리들을 위한 잠깐의 휴식들과 소박한 밥상이라도 차릴것이면

한나절 산행으로 절대 후회없는 산행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무더운 여름보다는 지금같은 연초록의 녹음이 올라올때...!

또는

소박한 마을 앞 들녘으로 황금빛 나락들이 넘실거릴때...!

 

다음에 금릉 8경중 단연 최고라는 화방사에서 보는 일출을 기대해 보면서

오늘

유년의 추억과 함께한 화방산 산행의  길고 지루한 갈무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