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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마음은 태양/고향이라는이름

고향마을의 소소한 풍경과 오랜 세월을 견뎌온 담벼락들

 

15년 전 사진이구나..!

고향 큰아버님 댁에서 누님이 찍었던 사진인 모양이다.

그때는 큰아버님, 곁에 큰어머님 , 그리고 어머님도 모두들 정정하셨건만..!

8년 전에는 큰아버님이 , 그리고 이번 주말에는 큰어머님이 큰아버님을 따라서 이승을 떠나셨다.

 

요양병원에서 의식마저 희미해지신지 오래였었는데..

결국 올 한해를 넘기시지 못하고 편안하고 힘겹지 않은 오랜동안의 깊은  잠을 선택하신 모양이다.

월요일 아침에는 온 평생동안 기거하셨던 정든 집에 마지막으로  꽃가마 타고 오신단다.

그리고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큰아버님 곁으로 가시겠지...!

 

나도 니 큰엄마 만큼만 살다가 갔으면 쓰것는디...어째야 쓰끄나..잉..!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어머님 말씀이시다.

 

 

 

 이 고향마을에서 태어날때부터 줄곧 방앗간이였던 이곳..!

고향을 떠난 이후에도 한참을 동네 나락을 찧었을 터..!

언제부턴가 현대식 정미소에 자리를 빼앗기고 그만 그만한 흔적들만 남기고 있다.

한때는 그 방앗간 자리를 소들이 들어 앉았다가, 또 어느때엔가는 돼지가 그자리를 바꿔 앉기도 했던곳

지금은 부업비슷하게 농사일을 하시는 사촌형님들의 창고와 농기구 저장소 역할만 간신히 하고 있는 모양이다.

 

앞에 허물어져가는 건물은 새마을 사업일환으로 만들어졌던 동네 공동우물터로 어렸을적에는

이곳이 마을 공동목욕탕 역할도 하곤 했었다.

지금은 흉물처럼 부서져 내리기만 기다리고 있다.

 

고향을 떠났던게 30년이 훌쩍 넘었으니 , 적어도 이건물은 내가 고향떠난 횟수 이상만큼 이곳에서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동네 이장님 말씀으로는

마을 공동 소유의 땅이라서 개인적으로 누구도 허물어 사용할수가 없다고 한다.

조만간 마을뒷산인 화방산을 산행하는 등객들의 시원한 해갈을 위한 우물을 만들 계획도 가지고 계신다고 하신다.

이 조그마한 집을 누님이 구입하면서 여태껏 밑빠진 독처럼 집수리에 올인했었는데..

 아직까지도 그 끝은 없어 보인다.
다만 ...폐허처럼 버려져있는 재래식 구들을 되살린것은   그중 제일 잘한것이 아니였는가 싶다.
 가끔씩 찾아가서 흙담벽으로 지어진 이 시골집에 장작불을 지펴주면 

등짝부터 뜨끈뜨끈하게 데펴져오는  노곤함은 그 옛날의 초가삼간집의 방구들,  그것이 따로없다.
보일러나 전기장판의 썰렁한 입김들과  어찌 비교가 되겠는가...ㅎㅎ
 
불지피고나면  이곳에 고구마라도 몇개 덮어두면 이보다 더한 행복이 또 있을까..?

 

 

▲ 세상에 그 어떤 법도 필요치 않는 순진한 세상을 살아가는 수일 아저씨네 집,

그리고 뒷쪽으로는 화방산 산행에서 처음으로 조망이 터지는 곳 뱃머리바위쯤

.(배의 앞부분처럼 생겼다. 바위위에서 보이는 조망또한 시원하고 , 찌릿한  전율이 함께 한다.)

" 삼천만이 살펴보면 오는 간첩 설땅없다 ."

하긴 이때시절이면 학교에서는 이승복의 나는 " 공산당이 싫어요" 를 한참 들먹거렸고

반공포스터를 미술시간이면 어김없이 숙제로 그려야 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 반공이데올로기의 흔적이 이곳 내 고향에서도   갈곳 잃은 유령처럼 살아남아서 마을 앞길을 지키고 앉았다.

 

이 마을을 지나는 첫 이미지 일텐데...다른 기발한 묘수는 없는 것일까..ㅎㅎ

 

 

삼화마을에는 마을을 가르는 길이 세군데 있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곳이 윗골목 , 또 아랫쪽 폐허잡풀이 우거진 곳은 가운데 골목..!

그리고 지금 고향집 바로 밑으로 지나는 곳이 아랫골목이였었다.

 

예전에는 이 골목 골목들에서 아이들 노니는 소리들이 여간 시끄럽지않았었는데..

지금은 사람떠나고 빈집으로 쓸어져가는 곳이 더 많아 보인다.

 

 

 

 

 

 

▲ 방앗간 하셨던 큰아버님 댁 돌담으로 나름의 기교와 방식들이 있어 보인다.

▲ 같은 돌담이지만 어떤 기교라든가 패턴을 찾을수없는 평범한 돌담쌓기

 

그리고는 이제 쓰러져가는 동네 골목의 돌담을 찾아서 마을 마실을 돌아본다.

이곳 골목들이 지들의 시끌벅적한 놀이터였을 것이면 , 금새라도 또래의 아이들이 뛰쳐나도지나 않을런지..ㅎㅎ

암튼

갈수록 폐허처럼 무너져내리는 집들과 담벼락들을 찾아서 사진으로 남겨 보았다.

특이한 것은

수십년동안 비를 맞았던 아랫쪽 돌담은 물때가 내려앉았는지 검은색으로 변색을 했다는 것

그리고 아랫쪽 기초가 되는 돌들은 굵고 넓적하면서 흑보다는 돌 위주로 체워졌다.

반대로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돌들이 작아지고 돌보다는 흙의 비율이 더 많아지고 있다.

튼튼하면서도 차가운 외풍을 견뎌낼수 있는 방법으로써의 삶의 지혜가 아니였을까..?

아니면  세찬 비바람을 견뎌내기위한  당연한 담쌓기였을까..?

 

이곳에서 멀지않은 병영에서는 빗살무늬형태와  키 높은 돌담을 쌓아 올렸는데

 이를 가리켜 병영 주민들은 하멜의 영향을 받은 하멜식 담쌓기라고도 이름한다고 한다.

 

  ▲ 큰아버님 돌담으로 역시나 아랫쪽은 반반하면서도  넓직한 큰 돌들이 촘촘하니 자리를 잡고

위쪽으로 올라올수록  돌간격이 벌어지면서  흙이 더 많이 채워졌다. 좀 색다른것은 각층으로 가면서 

같은 종류의 돌들을 같은 열에 일정하게 배열했다는 것,            

생각없이 무작위로 쌓기보다는 나름의 기교와 정성이 가득 담겨 있어 보인다.

최소한 40여년의 나이를 훨씬 먹었을 이 담벼락들...!

 

  ▲  인수조카네 담쌓기는 크게 색다름없이 무난한 방식이다.

그러면서도 대체적으로 돌들이 고르고 안정적인것들이 모아져 있는 것으로 보아   집 주인이

마을에서 우선적인 지위에 있었거나 , 아니면 쌀 한가마니라도 더  투자가 된것은 아닌가 싶다.ㅎㅎ

 

               ▼ 반대로 아랫쪽 담벼락은 돌팍네 시골집 아래채 돌담으로 ..윗쪽 돌담들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안정적이거나 규칙적인 돌들이 아닌 그때 그때 모아서 쌓은듯 싶은  잡동사니 돌들의 산만한 조합처럼 보이기도 한것이다.

                  본시, 이 집 주인양반은 구들작업을 했던 양반으로 집 곳곳에 넓고 반반한 구들들이 많던데...

담쌓는데에는 조금 소홀했던 것이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