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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한 산 이야기/환장하재, 남도산

담양 금성산성 둘레길

 

담양 금성산성 멋스런 성곾길을 걷다.

산행일시 : 2024년 4월10(수요일, 국회의원선거일 휴무)

산행코스 : 강천산주차장 - 깃대봉 - 왕자봉 - 북문 - 보국사터(휴당산방) - 내남문 - 외남문 - 내남문-노적봉-철마봉

                 -서문-북문 - 송낙바위 - 산성산(연대봉)-북바위(운대봉) - 동문 - 시루봉- 강천사

도상거리: 7km정도 될듯 싶고, 산행시간은 10:40분 북문출발14:50분 도착 , 4시간10분(점심 및 휴식시간 포함)

산행지기 : 갤럭시 S23+와 함께

고만고만한 메모 :

     - 강천산 100대명산 그 쉰네번째 산행으로 강천산 환종주 길

     - 순창 강천산과 담양 금성산성을 온전히 돌아나온 23km 종주산행

     - 강천산 산행보다는 금성산성 성곾 둘레길 산행이 훨씬 멋스럽고 조망이 좋았던 산행

     - 특히 봄날의 성곾 둘레길은 최고의 산행지가 될듯 싶다.

     - 조망은 노적봉과 북바위에서 가장 좋았던 뷰포인트

     - 강천산 왕자봉 산행보다는 금성산성 성곾둘레길이 훨씬 좋았고 기억에 남는 곳이라서 강천산 산행과는

       별도로 또 다른 산행지로 구분해서 기록을 남긴다.

북문(천왕문)

금성산성과 연계한 강천산 환종주는 북문에서 동문 방향으로 진행하는게 일반적이지만

금성산성을 한가운데로 가르는 보국사터 방향으로 진행해서 휴당산방을 들르고

외남문과 내남문를 시작으로 노적봉과 철마봉, 서문을 경유 다시 북문으로 올라서 송락바위와 연대봉과 운대봉

그리고  동문과 시루봉으로 돌아나갈수 있겠다.

다만 강천산과 연계한 산행일때의 2% 부족한 금성산성 환종주코스이고

금성산성 외남문에서 시작을 할 경우는 코스 선택하기가 훨씬 쉬워지겠다.

휴당산방을 왕복으로 다녀와서 동문이든 서문이든 어느쪽을 선택해도 별반 차이는 없을것이기 때문이다.

. 북문에서는 삼인산 불태산 병풍산과 담양호 그리고 건너편에 추월산과 보리암을 조망할 수 있겠고

동문에서는 강천산과 아미산 그리고 멀리 남원고리봉과 지리산까지도 조망이 가능할 것이다.

북문에서 보이는 담양호, 그리고  추월산과 보리암이 바로 건너로 보이는 조망좋은 곳이다.

 

 

북문에서 오늘 강천산 환종주를 위해 걸음했던 깃대봉과 왕자봉 그리고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강천산의 야트막한 능선들

멀리 왕자봉 뒷편으로는 순창의 또다른 산인 회문산도 조망이 가능하리라...!

보국사 터

소담하게 생긴 집은 홍성주 시인이 자연과 멋하며 시를 쓰며 노년을 자연인처럼 지내던 곳이라 한다.

휴당산방이라 이름했고 쉬어가는 집이라는 뜻이란다.

지금은 어떤이유인지는 몰라도  산방 열쇠는 단단히 잠겼고

오래 비워서 사람 손길이 떠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보국사터를 지나면 사람떠난 시골마을길같은 곳을 지난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농사도 충분히 지었을만한 곳

 

장성 입암산성, 무주 적상산성과 함께 호남 3대 산성으로 꼽히는 금성산성은

산성 동쪽으로는 연대봉과 운대봉 그리고 시루봉이 있고

남서쪽으로는 노적봉과 철마봉이 성곾을 이루고 있다.

금성산성은

1990년 8월 20일 사적 제353호로 지정되었으며

고려 때 첫 축성 이후 조선 광해군 2(1610) 개보수되고

12년 뒤 조성된 내성에는 민가와 사찰뿐만 아니라

곡식 16,000섬을 쌓아둘 수 있는 커다란 창고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금성산성(金城山城 사적 제353)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하였으며 수차례 개보수한 뒤 견고한 병영기지로 규모를 갖추었다.

외성(6,486m)과 내성(859m)으로 이루어진 석성으로 성안에는 군량미 창고와 객사, 보국사 등

10여 동의 관아와 군사 시설이 있었으나 동학농민운동 때 불타 없어졌다.

동서남북에 4개의 성문터가 있는데, 이 일대의 산지는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성안을 들여다볼 수 없고,가운데는 분지여서 요새로서 완벽한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

임진왜란 때는 남원성과 함께 의병의 거점이 되었고, 동학농민운동 때는 치열한 싸움터가 되어

성안의 모든 시설이 불에 탔다.

금성산성은 우리 민족이 겪은 여러 전란과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다

동학혁명뿐 아니라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은 물론, 6.25 때는 빨치산들이 자리 잡은 곳이기도 하였다.

  금성산성이 험준한 지형에 위치한 요새로서 성내에 계곡이 있어서 식수 조달이 용이하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이항복은 금성산성에 대해  "산성이 크고도 웅장하여 평양성보다 더 우수하고

사람의 힘을 크게 들이지 않고도 지킬  있는 곳이  절반에 이른다"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금성산성 들머리에 동학농민혁명군 전적비가 있는데

동학 혁명 때 우금치전투에서 대패한 녹두장군 전봉준(1854~1895)은

천혜의 요새인 금성산성에서 담양, 광주, 장성, 순천 지방의 1천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전열을 재정비하고 재기를 노렸다.

부족한 식량과 무기를 조달하기 위해 전봉준은 인근 순창군 쌍치면 피노리에 사는

동지 김경천의 집을 찾아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김경천은 전봉준을 안심시킨  감영에 밀고하여 

1894년 12월 전봉준이 관군에게 체포됨으로써 동학혁명은 사실상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 

그러나 금성산성에 남은 동학군들은 왜군과 관군을 맞아 20 일간 

피비린내 나는 격전을 벌이면서 끝까지 저항했지만 무참히 패하였고,

성내의 모든 시설이 전소되었는데,

당시 전투가 얼마나 치열하였는지 금성산성의 불길이   열흘 동안 계속 타올랐다고 전한다.

남문은 내남문과 외남문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내남문은 충용문, 외남문은 보국문

사진에 보이는 곳은 외남문인 보국문이다.

금성산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의 주인공

외남문인 보국문에서 보이는 담양호와 추월산

 

외남문(보국문)에서 내남분(충용문)으로 가는길이 봄날 벚꽃과 복사꽃 그리고 연초록의 새싹들이

어울려서 이쁜 길을 만들어주고 있다.

 

 

 

오래묵은 소나무 한가루가 바위 한켠에 멋드러지게 자리를 잡고 있는 

소나무 전망대인 노적봉

이곳 노적봉에서 보이는 담양호와 추월산 그리고 병풍산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가히 절경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평일 한가한 날이면 한없이 쉬어가도 좋으리라..!

노적봉에 올라서면 담양호의 한쪽 모습이 한반도 지형으로 보여지는 곳이다.

생각보다 거대한 담양호

어떤 연유로 담양호에 물을 가두었을까..?

 

담양호는

영산강유역종합개발 1단계사업의 일환으로

1976년 9월 높이 46m, 길이 306m의 코어형 필댐(fill dam)이 건설됨으로써 등장된 영산강 최상류의 저수지이다.

유역면적은 47.2㎢의 자체 유역과 인접 섬진강에서 유역 변경 방식으로 수량 보충을 위하여 설치한

취수보지점의 18.4㎢의 간접 유역을 합하여 65.6㎢이다.

만수 면적 4.1㎢, 총저수용량 6670만㎥로 풍수년과 갈수년의 유량을 연간 조절하여

6.245ha의 농경지에 충분한 관개용수를 공급하여

연간 1만여t의 미곡 증산과 댐 하류 담양읍 일원에 일당 3,000㎥의 상수도 용수 공급에 기여한다.

초당 최대 8.1㎥의 취수가 가능한 취수 시설과 초당 546㎥의 계획 홍수량을 조절, 방류하기 위하여

길이 50m의 수문 장치 없는 일류(溢流)댐을 가진 축구식 여수로가 댐 우안에 있다.

1976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담양호는

여러 개의 깊은 계곡으로 이루어진 가마골과 함께 수려한 경관을 뽐내는 관광명소이다.

 

소나무 전망대인 노적봉에서 추월산과 병풍산까지를 파노라마로 담았다.

왼쪽 희미한 산이 병풍산, 불태산 삼인산이고 오른쪽 담양호 한반도 뒤쪽은 보리암이 자리잡은 추월산이다.

오른쪽 깍아지른 바위암릉은 남문에서 서문가는길중 가장 조망이 좋은 철마봉

 

담양호의 한반도 지형과 철마봉 오르는 깔딱오름길

산성의 성곾둘레길이라 해서 나름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던 모양인데

이곳 철마봉 오름길부터는 왠만한 고산준령을 오르는것 만큼 힘이 들었다.

물론 강천산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했으니 왠만큼 체력적 고갈이 되어 있는것은 어쩔수 없을테지만

그래도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등지고 오르는 이 철마봉 또한 만만치 않았던 된비알 길이었다.

철마봉에서 내려보이는 봄날의 산성길과 소나무전망대인 노적봉

산성 한복판에는 보국사터였던 곳으로   편안한 휴식같은 공간을 나누었던  휴당산방이 보이고

건너편 능선에는 오늘 내가 다녀갈 마지막 봉우리인 동문쪽의 시루봉

철마봉에서 서문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담양호와 추월산

철마봉에서 서문으로 이어지는 성곾길은 말 그대로 성곾의 돌길을 따라 내린다.

서문으로 내겨가는 길에 보이는 산성산 정상

저 산성산은 연대봉이라고도 불리며 603m로 순천 강천산의 주봉인 왕자봉보다 높다.

서문

그리고 북문으로 오르는 오늘 최고의 된비알 오름길

북문 도착 직전에서 보이는 서문으로 내려가는 성곾길과 담양호 그리고 추월산

추월산 오른쪽 끝으로는 정읍 내장산도 구분을 한다는데...나는 잘 모르겄다.

다시 북문

오늘 강천산 산행중 처음으로 휴식과 간식을 겸했던 곳에 다시금 올라서

다시 휴식가 여분의 허기를 채우고 간다.

송락바위 쉼터

 

산성산(연대봉) 지나면서 보이는 성곾길에는 때아닌 봄날의 단풍색으로 물들어오고 있다.

봄날에는 연초록의 새싹만 올라오는 것이 아니고 옆은 갈색의 새순들도 올라오는 모양이다.

멀리 뒤쪽의 아미산, 정중앙으로 설산과 괘일산

아미산 뒤쪽으로는 남원고리봉이고 , 그 옆으로는 화순 백아산쯤 될것이다.

 

 

성곾 뒤쪽은 오늘 하루종일 시야에서 떠나지 않았던 아미산

아미산 뒤쪽 산군은 화순 백아산이고 아미산 왼쪽 뾰쪽 봉우리는 남원 문덕봉에서 이어지는 고리봉이다.

고리봉 뒤쪽으로는 지리산도 보일것이라는데...오늘은 무등산도 모후산도 구분키 어려우니

지리산이 보일것이라는것은 어림없는 욕심일 것이다.

강천산 계곡

왼쪽부터 산성산(연대봉)과 형제봉 그리고 왕자봉과 깃대봉이 연이어서 보일것이고

오른쪽 산성 끝점으로는 광덕산과 옥호봉도 어렵지 않게 구분이 가능해 보인다.

 

 

가장 높은 곳이 산성산이고 산성산 오른쪽 옆 깍아지른 암릉이 송락바위

 

북바위(593m, 운대봉)

남서쪽에 노적봉과 철마봉이 있었다면 북동족 성곾에는 산성산과 북바위의 멋진 암릉을 만날 수 있다.

한없이 쉬어가도 좋을 곳

북바위는 성곾으로 연결된곳이 아닌 왕복으로 다녀오게 된다.

북바위에서 내려다본 강천산과 강천계곡

 

 

 

동문

시루봉

 

 

 

시루봉 정상에서 보이는 풍경

가운데  소나무 전망대인 노적봉이고 그 옆으로 가장 높은 뾰쪽 봉우리가 철마봉

물론 가장 뒷쪽 가장 높은 산은 추월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