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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한 산 이야기/환장하재, 남도산

강진 수인산....철옹성같은 천혜의 요새

      강진 수인산...철옹성같은 천혜의 요새

 

 

산행지도 및 길찾기    산행일지

 

 

 

 07 : 05  지로마을, 산행시작

 07 : 25  홈골재(저수지)

 07 : 50  278 봉

 08 : 10  481 봉

 08 : 45  남문

 08 : 50  느티나무숲 이정표

          - 수리봉, 수인산성

          - 서문, 노적봉갈림길

 08 : 55  서문

 09 : 10  북문

 09 : 25  노적봉(봉수대)

 09 : 47  정상갈림길 이정표

            - 동문/도둑골/정상

 09 : 50  도둑골 갈림길

 10 : 15  감나무밭(이정표)

 10 : 25  홈골재 시작점

 10 : 35  지로마을 주차장

 지로마을 - 홈골재 - 남문 - 서문 - 북문 - 노적봉 - 도둑골갈림길 - 한바위재 - 홈골재 - 지로마을 : 총 8.54km  총산행시간: 3시간 30분

 

순천, 보성에서 강진, 해남으로 달리는 국도변에서 보이는 산들이 여러개 있다.

보성의 초암산과 제암산, 또 장흥, 강진의 수인산, 만덕산과 주작산 덕룡산, 그리고 해남의 두륜산이 그것인데

이번주말에는 이중에서 장흥을 지날때마다 오른쪽으로 보여지는 철옹성같은 절벽들이 보여지는 수인산을 다녀왔다.

그것도

강진 고향집에 조그마한 할일들이  있었는데 , 그 일들이라는 것을 잠깐 미뤄두고

  일요일,  이른 아침에 잠깐동안 사진만 몇장 찍고서  내려왔다.

 

준비물이라고 해봐야 작은 물병하나와  스틱, 그리고 카메라가방이 전부인 산행길

07시 산행시작 10시 30분 하산완료

이날 날씨는 옅은 박무가 가득 끼여서 사진들은 썩 깔끔하지 못하다.

날 좋은날에는 광주쪽 무등산도 보인다드만...오늘은 죄다 헛물이였다.

 

                    ▲ 홈골재(저수지), 홈골재 뒷쪽 큰 바위가 한바위로 큰 바위라는 뜻일성 싶다.

수인산은 강진 병영과  장흥을 가르는 산으로 해발 562m의 낮으막한 산이다.

하지만  높이에 비해 여타한 다른 산들보다 훨씬 웅장하고  암벽으로 사방이 둘러 쌓여있어 철옹성이나 다름없는  천혜의요새다

강진병영이라는 곳은 본시부터 하나의 큰 성이였었는데 그 성안에 또하나의 내성을 수인산속에 숨겨놓고  있는 것이다.

  수인산성(修仁山城)은 백제시대에 축조하여 천년을 지켜온 성으로 둘레 거리만도 무려 6km걸쳐서 이어져  있으며

환난의 시기때마다 백성들의 피난처였을 뿐더러  강력한 공격 거점이였다고 한다. 

지금도 성의 전체적인 골격은 골짜기를 따라 형태가 남아있고 수덕마을 ‘동문’에서부터 오르면 거의 온전한 성곽을 볼수가 있다.

 산행코스는 홈골저수지 옆에 있는 수인사에서 시작하여 서문과 북문

그리고 정상에 올라서 홈골로 하산을 하는 코스가 가장 짧고 일반적이다.

그리고  짧은 산행시간과 코스을 더 길게 연장할수 있는 방법으로는

수인사 옆 능선인 481봉을 경유하여 남문에 오른다음 노적봉 정상을 밟고 도둑골, 한바위재로 하산하는 코스도 고려할만하다.

또다른 코스로는 장흥 부산면 자미마을에서 시작해서 수인산성을 둘러본 다음 도둑골재, 한바위재로 하산하는,

일명 , 수인산 종주코스를 걸어도 좋다.


  홈골재에서 시작하는 산행으로 278 봉이나 481봉을 경유해서 남문으로

      올라설 경우에는 수인사 방향이 아닌 오른쪽 방향에 능선 들머리가 있다.

 

    수인사는 서문옆병풍바위 옆에 있었던 사찰로 조선 세종때 창건되었다는데

    임진왜란과 6.25를 거치며 소실되었고 산아래(저수지옆)에 있는 수인사는

    그 이후에 창건된 것이라고 한다.

    사찰이라기보다는  가정접같은 조그마한 암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지로마을 주차장에서 이곳 홈골제까지는 10 여분 소요된다.

11월의 마지막주말,

가을이 끝나가는 지금쯤이면 이런 특색있는 낮은 산들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늘 산행중에는 그 어떤 사람도 만나질 못했다.

물론 이른 아침의 산행이였으니... 어떤 미친사람이  이런 꼭두새벽에 산행을 할것이겠는가마는...ㅎㅎ

돌팍 지는...그 얼척없는 열정의 산행을 또다시 감행했다.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산행을 마친후 화방산을 등지고 있는 고향마을 집에서 잡다한 일들을 해 두어야 한다는 핑계를 빌미로..

 

조그마한 짜투리 땅을 갈아 엎어서 늦은 마늘도 심어야 하고..

여러집 식구들 김장한다던 배추도 손봐서 소금물에 절여야 한다.

또 , 김치 담가서 땅속에 묻을거라던데,   땅구덩도 그늘진곳에 김숙히 파놔야 한다.

 

그 와중에서도 고향마을의 지근거리에 있는 이곳  수인산을 한번 돌아보겠노라는 얼척없는 산 욕심...!

전날의 숙취가 가시지 않은  술취한 걸음으로 07시에 지로마을 팔각정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  홈골제에서 278봉으로 오르는 능선길로 거칠지 않고 차분한 길이다.

      ▲ 맹감나무(청미래덩쿨) 열매가 빨갛게 익었다.

아주 낮은 산이여서 그런지 , 다른산들에서는 이제 완연한 겨울느낌이 돌법도 하건만

이곳은 아직도 가을냄새가 겨울로 떠나질 못하고  아쉬운듯 미련처럼 남아있다.

도토리 나무에서도, 또 빨갛게 익어가는 맹감나무(땡감나무, 청미래덩쿨) 열매에서도 .....!

 481봉으로 오르는 차분한  능선길

새벽이슬 내려앉은 낙옆길들도 좋고 사철소나무 숲길도 좋다.

또한 너무 힘겨운 오름길이거나 거칠지도 않은것이  등로주변정리까지 아주  깔끔하게 잘 되어있어서 더더욱 좋다.

▲ 강진 수인산에서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남도의 이름있는 명산들이 조망이 되는데 오늘은 날씨가 썩 신통치를 못하다.

동쪽으로는 보성 제암산과 사자두봉 그리고 억불봉이,  서쪽으로는 유명한 영암 월출산이 바로 눈앞처럼 보인다.(윗쪽사진 왼쪽)

또한 남쪽으로는 해남 흑석산과 장흥 천관산도 보인다는데...오늘은 시야거리가 짧아서 어림없다.(윗쪽사진 오른쪽)

아랫쪽 큰 사진에서는 광대바위(큰바위얼굴)와 호랭이굴로  유명한 삼화마을 뒷산,  화방산이 조망된다.

▼ 아래 사진은 481봉에서 동쪽방향 제암산을 담았다.

가장 뒷쪽 봉우리들 중 왼쪽 가장높은 곳은  제암산이고,  곰재 사자두봉,  그리고 가운데 운해속에 갇힌 희미한 봉우리는 억불봉일게다.

아침 일찍 정상에 오르면 낮은 마을 주변으로 운해가 내려앉아 멋진 그림을 만들어 줄줄 알았는데

오늘은 하루종일을 찌뿌둥하게 시야를 가리고 있다.

낮은 산일거면서도 이름난 산군들은 죄다 조망이 가능하다는데..

오늘만은 예외가 되는 모양이다.

게다가 흐린 하늘에 가끔씩 태양이 얼굴을 내민다손치더라도

481봉능선으로 오름하는 오늘은 대부분의 풍경들이 역광이여서 손쓸제주가 없다.

이곳도 아무래도 오후빛으로 담아야 하는 산인 모양이다.


   ▲ 움푹 들어간곳이 남문흔적이 있는 곳                          ▲ 수리봉능선


◀ 481봉에서 보이는 수인산의 멋스런 바위군들

    왼쪽이 병풍바위와 남근바위 그리고 뒷쪽 가장

    높은 봉우리는 수인산의 정상인 노적봉이다.

    예전에는 봉수대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그 흔적은

    찾아볼수 없다.

  서문쪽 방향으로 앞쪽이 병풍바위 , 가운데는

     남근바위, 그리고 가장 뒷쪽바위는 방향에

     따라서 독수리  머리모양 같다고도 한다.

 ▼ 아랫쪽 사진은 남문으로 쓰였을 것으로 예상되는

      흔적들이다.

  

 

 

 



▲  남문과 서문의 중간쯤에 위치한 느티나무숲이라는 곳으로 옛 성터 흔적들을 고스란히 찾아볼수 있는 곳이다.

가운데는 우물이 있고 그 옆으로는 절구통, 그리고 불을 지폈을듯 싶은 구들 아궁이도 보인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서문으로 바로 연결되고 다시 30 여m 를 되돌아와서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북문에 이른다.

또한 오른쪽 계곡 방향으로 내려서면 수리봉능선으로 갈수도 있고 북문을 경유해서 노적봉 정상으로도 갈수 있다.

▲ ▶ 서문으로 이곳에는 샘터도 있다.  직각으로 세워진 멋진 바위 벽면에는

   알수 없는 글들과 이름들이 무수히 각인되어 있다. 특별한 내용의 이름들이 아닌

   그런저런 사람들이 자랑삼아 음각해 둔것이라 한다.

   아랫쪽 수인사쪽으로 산행을 이어오면  이쪽, 서문으로  올라서게 된다.


 

 ▲ 서문을 들렀다가 잠깐 되돌아 나와서 약간의 경사진곳을 오름하면 만날수 있는

     조망터로 수인산의 정상인 노적봉을 만나게 된다. 능선을 따라 내리면 북문

▲북문에서 15분정도 오르면 수인산 정상인 봉수대에 도착한다. 예전에는 봉수대

  역할을 했다는데 그 흔적은 없고 넓은 자리에 수인산 정상석이 자리하고 있다.


 

수인산 정상인 노적봉으로

 수십명은 충분히 앉을만한 넓은

공간에 561m 정상석이 자리한다

뒤로 보이는 뾰쪽한 봉우리가

제암산이고  북쪽방향으로는

멀리 광주 무등산도 조망이 된다

는데 오늘은 가시거리안에 없다.

◀ 올망졸망한 수리봉 능선

◀ 노적봉(수인산정상)의

    넓은 공터...!

 

 

▲ 가운데 병풍바위 뒷쪽  깊은 골을 따라 내리면 수인산성 동문으로 내려설테고,

중간사거리(두개의 큰 바위 왼쪽골짝)에서 수리봉과 북문으로 갈리는 길을 만나겠지 싶다.

수덕마을 주차장에서 시작 , 이쪽 골짜기를 통해서 올라오는 시간이 가장 짧고, 또한 가장 경사면에서 완만하다고 한다.

또한 등로는 오른쪽 능선을 타고 내려도 북문으로 내려설수도 있다.

이곳은 초행의 산길일것이면 이래저래 얽힌 등로와 등로 표지판으로 인해 많이들 애먹을것 같은 생각이다.

산행중 오늘처럼  산행지도를 열심히 들여다본 일도 드문 일이였던듯 싶다.

           ▲ 수인산 노적봉 정상에서 보이는 영암 월출산 천황봉과 구정봉

 

 

이곳 수인산은 조금 더 빠른 가을이였어도 참 이쁜 산이 아니였을까 싶다.

주종을 이루는 나무는 대부분이 도토리나무에 간간히 단풍나무, 그리고 소사나무도 많이 보인다.

 

물론 따뜻한 봄날에도 이런 저런 야생화들이 가득 피여나지 않을까..?


▲ 현위치라고 하는 것이  이름하여 " 정상 갈림길" 이다. 계속 직진하면 하산길을 놓치고 수인산성 동문으로 내려서게 된다.

하산길을 찾기위해서는 왼쪽으로 90도 꺽어서 방향을 틀게 되는데,  이정표 글씨가 병풍바위라고  표시되어있어서  쉽게  헷갈리지 않을까 싶다.

병풍바위보다는 도둑골 갈림길이나 한바위재라고  표시를 했으면 더 쉽고 명확한 길 안내가 되지 않았을까...?

도둑골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면 다시 북문으로 이어지고 병풍바위를 갈수 있으니 결코 틀린 이정표는 아니겠지만 

 좀..서툰 길안내 표시판을 만들지는 않았는가 싶다.

▲ 왼쪽 아래사진은 도둑골 갈림길로 왼쪽으로 내려서면 북문으로 내려설수 있다.


▲ 북문쪽 낭떨어지  벼랑구간으로 수인산은  수덕마을의   동문쪽에서 올라

   ▲ 홈골저수지와 홈골


오는 구간이외에는 사방이 천연요새처럼 바위암벽으로 막혀 있다. 

 ▲ 홈골가는길,  한바위재로 오름하기 위해서는  왼쪽 감나무 밭이 들머리

                 

 

홈골제에서 481봉을 경유 남문으로 오른다음 노적봉을 거치고 한바위재로 하산을 하면

3시간 안에 산행을 마칠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역시나 어제 너무 많이 같이 했던 주님 덕택으로

쬐끔은 무리가 아니였는가 싶다.

장흥 강진으로 이어지는 국도변에서 늘상 궁금한 시선으로만 바라보던 이곳..수인산

여유없이 움직이는 잠깐의 산행이지만 마음 한구석이 후련한 느낌이다.

 

다음달에 다시 오게될 수인산..!

그때는 소위 종주코스로 일컬어지는 부산면 자미마을에서 수리봉- 수인산성 - 노적봉-한바위재로 잇는

긴 능선을 걸어봐야지 싶다.

 

그리고는 하산완료

병영의 유명한 하멜식 돌담길과 병영성, 그리고 하멜공원 풍차를 스케치하고 서둘러 고향집으로 ...!

 

아들한테서 전화...!

응..10분안에 들어갈께..!

 ▲ 하멜기념공원과 하멜박물관


병영 마을의 골목은 넓고 깊다고 한다. 또한 높고 빗살무늬 형식을 띠고 있다.

가능한 납작한 돌을 골라 15도 정도 눕혀서 촘촘하게 쌓고 흙으로 고정시킨 후

다음 층은 반대방향으로 15도 정도를 눕혀 쌓는 것으로 이 마을 사람들은 이를

‘하멜식 담쌓기’라 부른다. 이 방식으로 담을 쌓으면 마치 빗살무늬 토기와 같은 무늬가 된다. 돌담 위에는 기와를 얹거나 구들장처럼 넓고 납작한 돌로 마무리를 했다. 병영마을 뿐 아니라 인근 도룡 마을에도 이 같은 하멜식 담쌓기를 흔히 볼 수 있는데 단지 골목이 더 작고 오밀조밀하다는 차이라고 한다.

병영성(사적 397호)은 조선태종 17년(1417)에 초대병마절제사 마천목(馬天牧 1358~1431) 장군이 축조하였다. 이후 고종 32년(1895)년 갑오경장까지 제주도를 포함해 53주 6진을 총괄했으니 그 위치와 역할이 대단했다할 수 있다. 병영성은 설성이라고도 불리운다.

▲병영성은 둘레는 2천8백 척에 높이는 18척으로 옹성이 12개, 포루가 2개, 우물이 9개 있었으며 2층 누각의 남문, 동문, 북문 등이 있었지만 지금은 성벽만 조금

남아 있기에 복원 공사 중이다. 당시 병영성 주위와 마을에 3000여 호가 살았다고 하니 그 규모가 상당했다(현재는 3백여 세대). 병영성은 근 500년 동안 그 역할을 충실히 했으니 병영마을 자체가 수인산, 성자산, 별락산, 화방산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천연요새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